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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알라딘

그래, 내 방 앞에서 너를 발견했던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칼이 필요해'란 생각 뿐이었어. 적당히 고풍스럽고 적당히
날카로운 칼을 상상했지. 나는 기대로 가득한 눈빛으로
칼날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볼 거야. 그 모습에는 갈망과
설렘과 불안이 가득 차 있겠지.

나는 칼의 날카로운 쪽이 아래로 향했는지 확인하고 칼날을
천천히 너의 배로 가져간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결코.
조심스럽게 중앙의 틈을 찾아내지. 그걸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섬세한 작업도 아니지. 그저 원래 갈라져 있던
부분을 발견하고 위쪽으로 찔러 넣는다.

그리고 지그시 칼날을 내려긋지. 그래, 열리고 있어. 열리고 있다고!
그렇지만 흥분해 있다고 해서 칼날을 너무 깊이 쑤시지는 않아.
내용물은 소중한 거니까 말이야.

한 번 날을 내려 그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야. 좌우로 두 번,
그러니까 위쪽에서 한 번, 아래쪽에서 한 번 다시 칼을 넣어야지.
아래로 내려긋는 작업보다는 섬세해야 해. 나는 보통 위쪽부터
칼집을 넣지. 위쪽에 칼을 대고 나면 뭔가 살짝 철커덩하는 느낌이야.
그렇지만 역시 아래쪽까지 끝내지 않으면 안 돼. 마지막 작업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칼을 밀어넣고 지그시 힘을 준다.
마지막 접합부마저 끊겨나가면 열리는 거야 너는, 철커덩!

나는 기대에 가득찬 눈빛으로 이제 내용물을 하나둘씩 꺼내.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
괜찮아, 내가 기다려왔던 거야. 아주 오래도록...

알라딘에서 주문했던 책을 결국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게 받았다.
택배상자를 뜯는 건 언제나 즐겁달까.


194	어느 쪽?	Giverny	2006/12/26	494

193	어느 날 문득	Giverny	2009/09/06	256

192	애정사용법	Giverny	2008/10/27	397

	알라딘	Giverny	2007/06/28	387

190	안녕안녕안녕 [1]	Giverny	2008/02/11	353

189	아주 작은 의미	Giverny	2010/03/28	415

188	아주 긴 금요일의 방황	Giverny	2006/12/16	596

187	아이티 관련 MBC 보도 [2]	Giverny	2010/01/30	376

186	아마도 아무도 아무것도	Giverny	2009/12/25	495

185	아가에게	Giverny	2007/03/01	396

184	쓰잘데 없는 이야기들	Giverny	2008/12/07	443

183	싫어	Giverny	2008/10/14	344

182	시간 여행자의 아내	Giverny	2009/09/16	334

181	속이 노란 고구마 [3]	Giverny	2010/02/02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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