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78 　16/20

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담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냄새만 맡아도 짜증을 느끼던 담배를
대학 1학년 때 처음 배운 이후(그래, 담배를 배운 이유란 것이
참 바보 같았다) 담배를 안 피운 날이 며칠이나 될까.
안 피우려고 마음 먹어놓고 하루도 못 참은 적이 몇 번이며
여태 담배에 털어넣은 돈은 또 얼마였던가.
담배를 배운 것을 딱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어렵게 버텨왔던 날들에, 살아가지 못하고 살아내던 날들에
(놀랍게도 지금 나는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기적, 이렇게 놀라운 기적에 가끔은
울고 싶어진다) 담배가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하면
나는 솔직히 고마움 외의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두 번 있었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던 순진했던
그때 결국 끊지 못한 담배를 끊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어느 평범한 날 아침이었다.
그 날 아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대단한 날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머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서재에서 일어났으니
분명 겨울이나 초봄이었나 보다(내 방은 너무 추워서 나는 겨울이 되면
서재에 이불을 깔고 잔다. 그리고 게으름 덕에 나의 잠자리는 초봄이
다 지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보통의 날처럼 잠에서 깨어난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도 편했다(내가 숙면하는 날은 일년에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 동시에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었다. 단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중간고사 첫날 시험을 망쳤던 때까지
3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그래, 초봄이었나 보다).
합리성과 합목적성이 배제된 채 그저 하나의 정언명령으로 내 머리 속에
갑자기 나타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그렇게 지난 6년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한 번은 한달 반 전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일주일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정말로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사실은 그
이후로도 계속 피우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결국은 또 기분을 견디지
못하는 일이 생기어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하고 틈만 나면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담배를 끊어야 하는 걸까?
며칠 동안 그 생각을 하다가 놀라운 결론으로 치달았다.
담배를 끊을 수 있는지도, 담배를 끊어야 하는 건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문제들의 결론은 결코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담배를 배웠던 것이 결코 내 바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담배를 결국 다시 피우곤 했던 이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68	분하다	Giverny	2008/02/12	409

67	안녕안녕안녕 [1]	Giverny	2008/02/11	353

66	잠시	Giverny	2007/11/17	437

65	사랑하는 친구들아 [4]	Giverny	2007/11/01	455

64	여러분 안녕 !!!!!	Giverny	2007/10/01	445

63	주소 나왔어요 [1]	Giverny	2007/09/17	527

62	* 주소 * [3]	Giverny	2007/09/13	480

61	광기	Giverny	2007/08/07	412

60	두렵고 또 아름답다	Giverny	2007/07/27	404

59	going insane	Giverny	2007/07/14	373

58	군가산점제, 여성들만 피해자일까? [72]	Giverny	2007/06/29	535

57	알라딘	Giverny	2007/06/28	387

56	question mark	Giverny	2007/06/21	326

	담배	Giverny	2007/06/21	408

[prev] [1]..[11][12][13][14][15] 16 [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