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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기다리다

"고통을 맛보며 눈을 뜨라지!" 갑자기 걷답을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신음 소리를 내던 그는 발을 구르며 무서울 정도로 맹렬한 기세로
외치는 거예요. "그래, 끝까지 거짓말쟁이였군! 어디로 갔지? 거기가 아니야
- 천국이 아니지 - 사라진 것도 아니야 - 그러면 어디로 간 거지?
아! 넌 내 괴로움 같은 건 알 바가 아니라고 했지! 난 한 가지만 기도하겠어
- 내 혀가 굳을 때까지 기도하겠어 - 캐서린 언쇼, 내가 살아 있는 한 편히
쉬지 못하기를! 내가 널 죽였다고 했지 - 그러면 귀신이 되어 날 찾아오라고!
살해당한 사람은 귀신이 되어 살인자를 찾아온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떠돌아다닌다는 걸 알고 있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줘 - 어떤 형체로든
- 차라리 미치게 해 줘! 제발 널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날 내버려
두지 말란 말이야. 아! 난 견딜 수가 없어! 내 생명인 너 없인 못 살아!
내 영혼인 너 없이 난 살 수 없단 말이야!"

Wuthering Heights(폭풍의 언덕) 제2권 2장 中, 에밀리 브론테, 유명숙 역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과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것 중 더 두려운
일은 어떤 일일까?
케인즈의 신봉자들이나 밀턴 프리드만의 신봉자들이나 모두 하나의
확신을 갖고 있다. 모두 그것을 하나의 진리인 것처럼 믿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세운다. 그러나 명백한 패배의 지표가 나타나면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이론이 발디딛고 있는 그 토대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 물론 언제나 마지막까지 신봉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단 한 번 사용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이 절대적 위치를 갖게 된 현대의 자본주의와 이미 실패로 드러났다기
보다는 애초부터 그 환상성 자체가 모순이었던 마르크스의 망령은
현실에서 혼돈 속에 공존한다.

서쪽의 어떤 사람들은 '알라 외에 신은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의 십자가를 신봉하면서도 신의 유일성과 삼위일체론을 갖고
싸운다. 예수회와 장셰니스트들은 신이 구원하는 인간의 수와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로 싸웠다. 그리스인들은 수백 명의 인격신의
삶과 사랑 이야기들을 만들고 로마인들은 그 이야기를 이어받았지만
북유럽에서 인격신들은 모두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모두가 다르게 믿고 모두가 다르게 살고 모두가 다르게 죽는다.

무엇도 믿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무언가 굳게 믿는다면 잘못된 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보통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삶이 어떠한 것인가, 삶의 모순들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런 삶이 옳은 것인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뚜렷한 결과로 현현되어 구체적
장애물에 부딪치기 전까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왔음이 후회된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했고, 믿지 못했기 때문에 환상을 키웠고
결국 그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환상에서 마침내
깨어났을 때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124	agony	Giverny	2008/11/29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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