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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까 말씀하실 때 이 약을 드셨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어떤 이유로 드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자네와 같은 이유였지."
"어떤 말들을 하셨길래 그 약을 드셨습니까?"
"자네가 알 것 없네."
"그럼 결과가 어땠는지라도 말씀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나는 자네처럼 돌이키기 위해 약을
먹었던 것이 아니야. 나는 단지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내가 말로 줬던 상처를 씻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 사람이
내게 돌아올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네. 내가 원한 건
단지 그녀가 내게 받은 상처를 다 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었어."
"그러셨군요. 그럼 지금 제 모습이 한심해 보이실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했지.
나는 왜 힘들게 약을 만들어 먹고는, 내가 했던 좋은 말들마저
다 잊혀져버리고서는 그녀가 돌아오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가장 슬픈 건 말일세, 내가 그녀에게 했던
온갖 다정한 말들이 잊혀졌는데도 나는 그 말들을 더이상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더군. 처음에는 몰랐지.
그냥 그녀가 이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행이라 여겼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해주고 싶은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지. 그래도 나는 참았어.
다시 같은 말들을 또 하게 될까봐 두려웠거든.
애써 내가 했던 안 좋은 말들을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웠는데
내가 다시 또 그런 말들을 하지는 않을까 불안했지."
"아직도 후회하고 계십니까?"
"아니,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 후회란 것도 젊을 때나 하는 거라네.
나이가 들면 지난 일은 이미 지난 일이란 걸 깨닫게 되거든.
하지만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다네.
그러고보면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르겠군.
자네는 내가 지금 무엇을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습니다. 짐작도 가지 않는군요."
"시간을 되돌리는 약이라네.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세상의 모든 것의
인과율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되돌리고 싶어. 그녀를 처음만났던 순간으로
말일세. 물론 과한 욕심이지. 가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네. 그럼에도 이렇게 바라는 걸 보면 나도 아직
많이 늙지는 않았단 생각이 들기도 하네."
"영감님이 돌이키고픈 시간 정도라면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로 돌아가겠군요. 제 존재 자체가 없어질 지도 모르겠는 걸요."
"걱정하지 말게. 그런 약은 만들 수 없을테니까.
시간을 되돌린다니 말도 안 되지 않나. 마법이란 것이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약을 연구하고 있지.
그만큼 평생의 한이란 거겠지."
"만약 돌아가실 수 있다면...행복하실겁니다."
"글쎄..."
"사랑하셨던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만나지 않도록 돌아가려는 거야."
"어째서입니까? 돌아가신가면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잖아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자신 없네. 그나저나 그 '돌아가신다면'이란
말 좀 그만할 수 없겠나? 자꾸 내가 죽을 거란 말로 들리잖나."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냐, 그건 죄송해하지 않아도 돼. 쓸데 없는 걸 물어본 걸 죄송해해야지."
"그렇다면 그것도 죄송합니다."
뱅은 그렇게 말하고 옛날 일을 떠올렸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날을.
어느 모임에서 그녀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자 누군가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그때 그녀는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뱅은 그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것이 귀에 너무 생생해서
며칠 동안 그녀의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녀의 얼굴보다도
그 생기어린 말투와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 후로 뱅은 그녀를
쫓아다녔고 한 달 후에 겨우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추억에 빠진 뱅이 씁쓸한 미소를 짖자 노인이 외쳤다.
"자, 어서 약을 만들자고. 자네가 나처럼 노인이 되기 전에 말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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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