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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몇 줄 읽기 시작했다.
(일부러 화장실에 쳐박아 놓았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지만 역시 입바른 소리는 아무리 좋아도 꾸준히 읽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그 짧은 몇 줄에도 역시 많은 생각이 든다.
많은 생각을 전하는 글이 아니라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스토아 학파인 아우렐리우스는 우주에 하나의 원칙, 하나의 근본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나 역시 스토익 하다)
그 원칙이 어떠한 성질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는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고
사실 아우렐리우스도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볼 때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따라야하는 그런 원칙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道라는
개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나는 스토익 하다기보다는
애초에 도가 철학을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접하며 자랐다기 보다는 스쳐갔지만 영향은 컸기에)
스토아 학파 사상과 통하는 부분이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道는 자유로우며 하나의 근본적 개념이되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모든 대상에 따라 역설적으로
절대적 상대성을 갖는 것이다.
스토아의 원칙이나 道에 가장 근접한 개념은 역시 사랑인 듯 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개별의 사랑도 아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절대적 사랑도 아니며 모든 사물과 모든 우주와의 교감이자 일체감이다.
그 일체감 속에서 우리는 타자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될 수 없으므로 전체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체주의와 혼동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죽어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죽이는 쪽을 전체주의라 할 수 있다면,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원칙에서는 전체의 개념이 뒤집혀 그 한 사람의 개별자가
자발적으로 전체를 위하여 죽어야만 한다. 별로 좋은 예가 아니기에
역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 한 사람 이외의 모든 사람들도
그 사람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 그의 원칙은 아니다.
그저 도덕이나 원칙의 실행자가 개별자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모든 개별자 각각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세상에는 악이나 부도덕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모든 사람이 원칙에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니, 누가 선하지 않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따라서 위의 상황에서 그 누군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고
아우렐리우스의 원칙에서 그것은 그 어떠한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지 아우렐리우스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한다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만이 분명하다.
내가 십수년간 혼자서 세우고 부수었던 도덕론(그래서 사이비에 가깝고
가끔은 미쳤다는 소리도 듣는 그 말도 안 되는 도덕론에서)도
비슷한 것을 요구한다.
결과는 개개인이 책임질 수 없다. 모든 인과관계는 단일한
원인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정확히 말하면
거의 절대적 숫자의 타자, 요인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절대적으로 선한 의도를 통해 행동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절대적으로 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나를 위해 내 방을 청소했는데, 나로서는 내가 놓았던
자리에 물건이 없어서 중요한 물건들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고 해보자.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불편함이 가중되었지만 내 방을
치워준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분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이런 경우에 화를 낸다-_-
그러니 그저 원칙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도록 하자;)
이 경우 내가 애초에 물건들을 잘 정리해 두었어야 옳겠지만
나는 보통은 다른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내 방을 치운 사람의
경우 내게 중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찾기 쉽게 정리를
해놓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된다고들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경우
그 결과가 0인데 반해, 선한 의도로 행동을 했는데 그 결과가
음의 결과를 갖는 것은 매우 불행하고도 슬픈 일이다.
따라서 선을 행할 때는 상당한 관심과 이성이 필요하다.
관심과 조심성, 이성을 통하지 않은 선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선을 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나 그 자기만족이 선행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선한 자야말로 가장 치밀하고 가장 진실되고
가장 현명해야 하며 가장 박식하고 세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보다 악을 행하는 것이 더 쉬운 이유 또한
다를 바 없다. 가장 멍청한 자도 악을 행할 수 있지만 가장
박식하고 꼼꼼한 사람도 선을 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개별의 원인-결과로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세심하게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사소한 것을 놓침으로써 가장 큰 선을 의도했던
것이 가장 큰 악으로 바뀔 위험도 항상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을 행하지 않아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 개별자들은 선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은 그저 자기만족에
그쳐서는 안 되고 치밀한 이성과 진심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불행히도 나의 도덕론에서 무지=악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결론을 수정할 생각은 지금까지는 조금도 없다.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적당한 지식이 완전한 무지보다 더 악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개별자들의 행위의 대상자가 우리 자신일 경우
우리는 개별자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그 개별자들의 최선의 노력일 뿐인 것이다.
만약 개별자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자기만족적인 선을
행하였다면 그것은 비난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개별자는 선을 행하되 이성과 진심을, 최선을 다해 행할 것이요
우리 개인은 그 선을 대함에 있어 그 결과가 아닌 개별자의
의도만을 보아야 할 것이다.
행위가 결과를 만들어 내며, 결과가 수용자를 담보 한다면
모든 행위는 수용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개별자로서(물론 개별자는 언제나 동시에 수용자이다)
또 수용자로서 나 자신의 도덕론에 부끄럼 없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럼 아름다운 뮤직 비디오 한 편으로 마감.
http://katerine.free.fr/Vid05.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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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관하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