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 정확하게는 그렇게 단언할 만한 시대적 상황이 도래했기에 - 실존의 문제가 불거졌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면 신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가며 준비해왔던 것이다."
라는 말로 그는 그 날의 일기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는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꿈 속에서만은 마지막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아니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잊으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잊혀지지 않았던 그녀의 그 말이 나오려던 순간 그는 그녀를 꼬옥 안았고 그와 그녀, 둘 모두 울 뻔도 했지만 그저 울먹이며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 꿈의 뒷부분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꿈에서 깬 후 신이 존재하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 문제는 그녀가 그 때 정말 울었는지, 아니면 그가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인지의 문제보다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녀가 마지막에 울었다고 믿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확신했기에 가슴이 아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지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어하기에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심이 생겨났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쪽 보다는 그 때 그녀가 울었던 쪽이 더 슬프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구 위에서 오늘도 재잘거리는 나머지 70억명쯤 되는 존재들은 신의 부재 쪽이 더 슬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울었던 쪽이 더 슬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그녀가 그 때 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랑 만나면 네가 힘들어"라고 했을 때 그 말에 수긍해버린 자신의 비겁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훨씬 비겁했던 순간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수많은 자신의 비겁함들을 그 한마디로 덮어버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려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것인지, 다른 사랑을 얻지 못해 그 기억으로 도망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느쪽이든간에 이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외로웠다.
11년 전 그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첫사랑이었다. 그렇지만 3년 전에 그는 그 아이를 만났고 한참을 손을 잡고 서 있었지만 아무런 설레임도 느끼지 못했다. 그 때 그는 지독한 허탈감을 고백해왔다. 그리고 7년전 그는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몇 달 전 그 아이의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그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 역시 그에게는 지독히도 허탈한 경험이었다. 그는 그녀와의 기억도 그렇게 되어버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 머지않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듯 모든 것이 너무도 쉬워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잃은 것보다도 그녀를 잃은 후에도 모든 것이 쉽다는 사실을 못 견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이 부재하는 곳에 빛이 스며든다. 사랑을 잃은 마음에야 말로 행복이 싹튼다." 그는 그 날 일기는 그렇게 마치겠노라고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그가 그 날 밤 적으려던 말이 진리이든 아니든 그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언제나 어떠한 사실이 진실이냐 아니냐 보다는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싶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버텨낼 수 없는 것이다. 신도 빛도 부재하는 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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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감정으로 무언가 적어내려가고픈 기분이었는데
이 글은 감정을 저리로 밀쳐내고 억지로 짜내어 쓴 듯한 기분이다.
내가 적은 그 어떤 글보다도 진실하고 무미한 글.
문체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문체란 것이 있었다면...)
칼릴 지브란은 문체란 그 사람의 사상을 말해준다고 했다.
(나에게도 사상이란 것이 있었다면) 적어도 내가 변한 것만은 틀림 없다.
* 현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3-06 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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