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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靜化

모난 마음이 무뎌지고 화와 짜증으로 가득했던 머리 속이 느슨해진다.
언제쯤이면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더우면 그저 덥다고 느끼고
사랑하면 그저 사랑한다고 느끼고 미워하면 그저 미워한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잊었던 것들이 하나둘 생각이 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나는 더이상 크게 놀라지도
더이상 아주 부끄러워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부끄러워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나는 계속
이토록 무뎌지고 못난 인간이 되어 가는 걸까.

한 번 일탈을 꿈꾼다고 해서 혹은 한 번 나 자신을 저버리려고
다짐한다 해서 그런 바보같은 짓을 실제로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음 번에 같은 만큼 삶에 환멸을 느낄 때 모든 것이 쉬어진다.
나의 무뎌짐은 하나의 누적이 되어 다음 번에는 반드시 나를 더
한심한 상태로,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나의 비어있는 농협 통장에는 이슬이에게로 후원해야 하는 돈이
자동이체로 빠지게 되어 있고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이슬이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으며 후원계좌에 돈도 반 밖에 못채웠다.
그럼에도 나는 갖가지 변명들을 더해간다.
나도 돈이 없었다고, 너무 바빴다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등등등

마음이 정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모자란 인간이기에 언제나 시간이 지나야 감정을 식힐 수 있고
감정이 식은 후에야, 아니 감정이 식은 직후에만 모든 것을 바로볼 수 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점에서 옳았고 어떤 점에서 옳지 못했으며
내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정화된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은 사랑도 분노도 미움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나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과 여유다.

나는 옳았고 지금도 옳으며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틀렸었고 지금도 틀렸으며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매순간- 옳고 그름을 가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옳거나 그르며, 내가 견딜 수 있거나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네게 물을 것이다.
정화된 마음 속에서 갈라진 명제들, 옳은지 그른지, 내가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나는 식은 감정으로 차분히 설명할 것이다.
나의 설명에는 옳고 그름이 없을테고 선택은 나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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