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다락방 소녀 - 로이스 메츠거
번역 : jay ( jay@jay.pe.kr http://jay.pe.kr/ )
애바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좁은 다락방 창틈으로 푸른 하늘이 주홍으로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공기는 젖은 나뭇잎처럼 기분 좋은 냄새를 냈고, 새들이 여느 이른 저녁처럼 지저귀었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으며 살충제와 제초제를 그렇게 열심히 뿌렸는데도 여전하다고 불평하는 새엄마의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애바는 잡초를 좋아했다. 먹어도 될 것처럼 높이 자란 초록.
애바는 여학교에 다녔다. 그 날 오전에 새엄마는 학교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
"애가 저와 말을 안 해요." 애바가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새엄마가 프랜 문더 박사에게 말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 애바에게도 말소리가 다 들렸다.
"담당 교사들과 상담해 보았습니다." 문더박사가 말했다. "선생님들은 애바가 수다스럽지는 않아도 필요한 말은 한다더군요. 애바는 성실한 학생입니다. 친한 친구는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학생들이 애바를 따돌리지도 않아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제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요. 저는 노력했어요. 정말로 노력했다고요. 그리고 이런 상황치고는 꽤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아이 아빠가 죽은 이후로......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문더박사가 상냥하게 말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저, 그이는 몇 달 전에 떠났어요. 갑작스런 병이었죠. 그저 기침을 몇 번했을 뿐인데ㅡ보통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잖아요. 글쎄, 별 일 아닌 게 아니었어요."
"그런 놀라울 데가. 저도 기침을 좀 한답니다."
"결혼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불같은 연애였죠. 정말 정열적인.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제 생각에는.....아무래도 양호교사에게 한 번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이 기침 말이에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전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답니다. 솔직히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죠. 하지만 애바가, 말하자면 세트로 딸려 왔을 땐, 기뻤어요. 처음부터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저는 시간을 두면 될 줄 알았어요. 글쎄, 전 노력했어요.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어요. 아이에게 새 옷도 사 주었죠. 아,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주말에 입을 예쁜 옷과 머리핀을 마련했어요. 그 앤 머리카락이 정말 길거든요 ㅡ 샤워하고 나올 때 보았죠 ㅡ 허리 아래까지 내려와요. 아세요?"
"아니오." 문더박사가 대답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에게 머리카락을 머리나 목에 닿지 않게 빗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인 집에서도 학교에서처럼 하고 다녀요ㅡ밤에도요! 내가 사준 옷을 입느냐, 전혀 아니에요. 누더기나 다름없는 옛날 이불을 덮어요. 누비이불을 두고서요. 전 캐노피 침대(역주: 천장과 네 기둥이 달린 침대)와 레이스 커튼이 있는 꿈에나 나올 법한 멋진 침실을 꾸몄어요. 애바가 그 방에 있느냐, 전혀 아니에요. 그 앤 다락방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요. 그 먼지투성이 낡은 방에서!"
"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요?"
"엄마가 죽었을 때 애바는 갓난아기였어요. 아이 아빠 혼자서 애바를 키웠죠. 그가 저를 만나서 그렇게 행복해하고 고마워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그인 딸과 무척 가까웠지만, 애바가 열 세 살이 되자 아이에게 이야기를 나눌 여자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글쎄, 이렇게 될 줄 그이가 알았다면!"
애바는 방으로 불려갔다. 문더박사의 머리카락은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복슬복슬했다. 애바는 길고 늘씬한 다리를 발목에서 꼬고 회전의자에 앉은 새엄마 옆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애바, 네가 새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이니?" 문더박사가 물었다.
애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 보세요, 이렇다고요." 새엄마는 화가 났을 때도 높고 또렷한 광대뼈와 크고 어두운 눈이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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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바는 다락방에서 해가 나무 아래로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참새와 어치새, 홍관조까지 가지와 가지 사이를 날아갔다. 애바는 기운차 보이는 참새를 좋아했다. 울음소리가 거칠긴 해도 어치새도 좋아했다. 강렬한 붉은 빛이 돋보이는 홍관조는 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날에는 다른 새가 나타나 창틀에 앉았다. 별 볼품은 없었다. 작고 동글동글했으며, 가슴은 어두운 갈색 줄이 몇 개 있는 밝은 갈색이었고 짙은 날개에는 더 짙은 갈색 줄무늬가 나 있었다.
"작은 갈색 새야." 애바는 자기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배고프니?"
새는 창틀을 쳐다보더니 날아가 버렸다.
애바는 부엌으로 달려 내려가 빵을 한 조각 떼어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빵을 찢어 창틀에 몇 조각 올려두었다.
작은 갈색 새가 돌아왔다. 빵조각을 먹더니 애바를 쳐다보았다.
"더 줄까?"
새는 다시 날아갔다.
이번에는 빵을 여러 덩이 가져왔다. 줄을 지어 놓아두고 기다렸다. 그러나 새는 돌아오지 않았고, 애바는 빵조각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치웠다.
그날 밤, 애바는 아버지의 책ㅡ사진 몇 장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아버지 물건 ㅡ 에서 새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아버지는 탐조가로, 모기장과 쌍안경을 챙겨들고 아침 일찍 야외에 나가는 모임에도 여러 해 동안 속해 있었다. 어쨌든, 그 새는 십자매였다. 암컷이다. 수컷은 이마가 밝은 빨간색이니까. 그래. 그 새는 여자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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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에 애바는 창틀 가에 앉아 빵조각을 죽 늘어놓고 기다렸다. 서늘하고 깨끗한, 멋진 가을날이었다.
작은 갈색 새가 돌아왔다.
"안녕! 배고프니?"
새는 빵을 몽땅 먹어치웠다.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애바를 쳐다보았다.
"더 줄까?"
“아니." 새가 대꾸했다.
어라.
"너 정말 말한 거니?" 애바가 말했다. "내가 미쳤나?"
"이건 시간낭비야." 그리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
저녁 식사 시간쯤 되자 애바는 모두 ㅡ 작은 새의 놀랍도록 깊게 울리는 목소리도 포함해서 ㅡ 자기가 상상한 일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애바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식탁을 정리한 다음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애바, 솔직히 말해서," 새엄마가 말했다. "그인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도 했어! 너만......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건 너만이 아니야."
애바는 방으로 돌아갔다. 매트리스 위에 놓인 침낭에 들어가 잤다. 애바는 푹신한 새 누비이불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부드럽고, 너무 따뜻했다. 예전에 쓰던 낡은 파란색 면이불이 그리웠다. 그리고 페이즐리 무늬(역주: 스코틀랜드산 가는 곡선 무늬의 일종)의 새 벽지는......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아팠다.
다음 날에도 애바는 다락방에 가서 빵을 뿌렸다. 새가 와서 빵을 먹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쩌면 난 미치지 않았는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말하는 새일 수도 있지."
"난 말할 수 있어. 수다스럽진 않지만, 필요한 말은 해."
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새가 말했다. "매번 사람들은 자기가 미친 게 아니라고 확신해야 하거든. 진짜 지겨워."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건 적이 있구나?"
"말했잖아. 필요한 말은 한다고."
"지금은 왜 필요한데?"
새는 고개를 젓고 또 날아갔다. 어쩜 그리도 성급한지! 조심해야 했다. 아마 질문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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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빵을 먹는 동안 애바는 조용히 기다렸다.
"자, 그럼." 새가 말했다. "이제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봐." "바로 그거구나! 마법에 걸려 저주를 받고 있었어! 넌 끔찍하게도 작은 새의 몸에 갇혀버린 공주나 뭐 그런 사람인 거지?"
"아닌데."
애바는 깃털을 곤두세웠다. 말하자면 말이다. "‘갇혔다’고 하려던 건 아니었어."
"좋을 대로. 하던 얘기나 계속 하자."
세 가지 소원. 하지만 소원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너 혹시ㅡ"
"안돼."
"하지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바는 잠깐 고민했지만, 참을성이라곤 없는 새의 성격을 생각해서 얼른 말했다. "예전에 쓰던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원래 있던 식으로 말야. 새엄마가 바꾼 방이 싫어. 꼭 잡지에 나오는 방처럼 예쁘장하고 주름투성이거든."
"새 방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말한 적은 있니?"
애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좋을 대로. 내일이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애바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애바의 방이었다! 새엄마가 버렸던 것과 거의 똑같은 파란색 면이불이 있었고, 창문에는 평범한 커튼이 흔들렸으며, 끔찍한 페이즐리 무늬 벽지까지도 새로 발라져 있었다ㅡ구름과 파란 하늘이 그려진 귀여운 디자인으로.
애바는 저녁을 먹으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새엄마는 애바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꺼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오늘 할 일을 두고 네 방을 완전히 바꾸었어. 예전 모습으로 돌려놨지. 마음에 드니?"
애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에게 방에 대해 말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지만, 물론 새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완벽했어!"
"나한테 인사하지 마. 하루 종일 사다리에 올라 벽지를 발랐던 사람은 내가 아니야."
"하지만 ㅡ"
"다음 소원은?"
준비해 둔 소원이 없었다. 새 방에서 느낀 행복과 편안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생각해야 했다......"새엄마가 사준 옷이 싫어. 단추가 반짝반짝 빛나는 우아한 바지, 주름이 들어간 스웨이드 셔츠, 오 킬로는 될 것 같은 머리핀 모두. 내 옛날 옷을 돌려받고 싶어."
"새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있니?"
애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좋을 대로. 내일이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애바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장으로 달려갔다. 굉장했다! 애바가 직접 샀을 법한 옷이었다. 취향에 딱 맞았다. 면티, 스웨트셔츠, 티셔츠, 큰 주머니가 달린 바지.
"오늘도 그랬단다." 새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며 말했다. "할 일이 정말 많았는데 손도 대지 않았어. 대신 네 옷을 모두 복지기관에 갖다 주고 네가 예전에 입던 것과 비슷한 옷을 사 왔지. 마음에 드니?"
애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음. 내 옷을 사거나 방을 꾸미는 일은 항상 어머니께서 하셨거든. 어머니께서는 어린 숙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나보다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시곤 했지. 나는 그걸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너에 대해서도......음. 그냥 나 같을 줄 알았어. 하지만, 결국 그건 네 옷이고, 네 방이잖니. 그렇지?"
애바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애바는 다락방에서 새에게 얼마나 행복한지 말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애바가 신이 나서 말했다.
"나한테 인사하지 마. 그 많은 물건을 새로 사려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렸던 사람은 내가 아니야."
"하지만 ㅡ"
"마지막 소원은?"
이번에도 준비해 둔 소원이 없었다. 생각해야 했다. "나는.....나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내일이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그날 밤, 애바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가 무슨 일을 할까? 학교에 전학생이 올 수도 있었다. 물론 옆자리에 앉게 될 테고, 첫눈에 잘 통하는 사이가 되리라. 아니면 원래 있던 애들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애바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로 결심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옆집에 사는 노부부가 이사하고 애바와 동갑인 여자애가 있는 새 식구가 이사올 수도......
이 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친 후 빵을 몇 조각 모아 다락방에 올라갔지만, 새는 나타나지 않았다. 속은 기분이었다. 세 가지 소원이라고 약속했으면서!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인데!
애바는 부루퉁하게 앉아 저녁을 먹었다.
"무슨 일 있었니?" 새엄마가 물었다. "화난 것 같아 보이는데."
애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애바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화장대 위에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애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물건은.....빗이었다. 커다란 은손잡이가 달린. 손가락으로 솔을 쓸어보았다.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았다. 딱 맞았다.
애바는 아래층에 내려가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새엄마 앞에 섰다.
"이 빗 제게 주시는 건가요?"
"어머! 어머! 놀라 죽을 뻔 했잖니!" 새엄마는 숨을 몇 번 깊이 들이쉬었다. "아아, 훨씬 낫구나. 정말이지, 애바, 너무 조용하고, 넌 너무 오랫동안 한 마디도 않고ㅡ" 새엄마가 애바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응, 그 빗. 우리 어머니께서 쓰시던 거야. 생각해 보니까.....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 그냥 빗이 보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네 방에 놓아두고 있었거든."
"예뻐요." 애바가 말했다.
새엄마는 애바가 머리 끈을 풀어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몸을 이불처럼 감싸며 건강하게 반짝이는 금발이었다. "어머, 애바. 머리를 내렸구나."
"빗어 주실래요?"
새엄마는 애바의 뒤에 서서 머리를 빗었다. 너무 거칠지도, 너무 힘없지도 않았다. 딱 맞았다. 그리고 새엄마가 머리를 빗는 동안 애바는 말하고, 말하고, 또 말했다. 말이 그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새엄마는 몇 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바는 엄마가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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