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클래식(goclassic.co.kr) 고영종 (moguler)님의 글
페미니스트 음악학자 수잔 매클러리(Susan McClary)를 아시는지요..?
물 건너 공부할 때에 그녀의 저술을 몇 번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지반이 균열되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저술을 탐독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 제가 당시 했던 공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음악학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지금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은 음악학이라는 분야에서 어떻게 연구되고 분석되는지 알고 싶다는 순전한 지적 호기심에서 서양 음악학 관련 학술서는 항상 제 관심권 안이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은 수잔 매클러리라는, 지금은 UCLA의 음악학 교수인, 음악학자의 책 "Feminine Endings: Music, Gender, & Sexuality"란 미네소타 대학 출판부 간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만 대충 다음과 같은 주제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음악적 구조
전통 음악 이론의 젠더화된 측면
음악적 서사에 있어서의 젠더화된 섹슈얼리티
젠더 담론으로서의 음악
여성 음악가의 논쟁적 전략
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음악학 책에서 되풀이되는 주요 주장들에 동의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과대망상적 페미니스트의 역시 과대망상적 도발'로 치부하여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저의 주요한 관심은 아니었고 다만 "이렇게 음악을 '읽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점에서 매우 매혹적인 글읽기 경험을 제공했던 책입니다.
매클러리는 이 책에서 서양음악사의 기반이 가지는 '남성성'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먼저 소나타-알레그로 형식(Sonata-Allegro Form). 매클러리는 이 형식이 어떻게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제국주의적일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매클러리는 소나타 형식이야말로 1600년부터 1900년까지의 음악에 있어서의 욕망을 낳게 하고 또 그것을 교환하는 양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주제 키(혹은 첫 번째 주제 그룹), 이른바 '남성적' 키는 음악적 서사에 있어서 항상 남성이자 자아를 상징합니다. 반면 두 번째(부수적: 두 번째 주제 그룹) 키, '여성적' 키는 주제 키의 타자로 설정되며 탐험되고 정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지되어 결국 '자아'이자 '남성'인 주요 키(tonic home key)속에 용해되어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제 조악한 번역을 못 참으시는 분은 다음 원문을 참조하세요.
The primary, once "masculine", key (or first subject group) represents the, always in narrative, male, self, while the secondary, "feminine" key (or second subject group), represents the other, a terrority to be explored and conquered, assimilated into the self and stated in the tonic home key.
즉 '남성적' 주제 그룹은 종지부에 이르기까지 타자화된 '여성적' 주제 그룹을 만나 '난관'을 겪게 되지만 결국 모두 정복하고 다시 으뜸 화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보통 '강건하게', '활기차게', 씩씩하게' 등의 음악적 용어로 표현되는 이 첫 번째 주제 그룹은 역시 '약음기를 끼고', '부드럽게', '우아하게' 등의 음악적 지시어를 가지는 '여성적' 주제 그룹들을 정복하고 다시 '강건하게' 되풀이된다는 것, 곡이 종지부에 이르러 모든 '여성적' 장애물과 난관은 극복되고 남성성이 다시 굳건히 선다는 의미에서 매클러리는 소나타 형식을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매클러리의 이러한 해석은 라캉과 데리다의 분석틀을 빌려온 것이라고 봅니다.
매클러리는 소나타 형식의 분석에서 더 나아가 서양음악사의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들(카르멘, 차이코프스키 4번, 베토벤 9번)을 분석합니다. 매클러리의 다소 도발적이고 극단적인 주장들 가운데 하나는 베토벤의 9번 1악장을 이른바 '강간범의 환상(rapist's fantasy)'으로 비유하는 데에 그 절정을 이룹니다.
"9번 교향곡의 첫 악장의 재현부(recapitulation)의 중심 부분은 음악에서의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들 중 하나이다. 세심하게 계획된 종지형은 좌절되고 그 억울렸던 에너지는 정액을 방출할 수 없는 강간범의 교살적 살인 강간과 같이 폭발해 버린다."
위 문장은 참으로 도발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매클러리는 9번 교향곡의 1악장이 서양음악사에서의 '남성성우월주의'의 극대화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특히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의 그 '미친듯이 불타오르는' 광기를 바로 타자(여성)를 교살하고 싶어 안달인 남성우월주의적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봅니다. 이 문장은 당시 Minnesota Composers' Forum Newsletter라는, 극히 소수의 독자들만 읽는 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에 처음 등장했는데, 당장에 엄청난 격론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후에 매클러리는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 책, "Feminine Endings"에서 보다 점잖게 표현했습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첫 악장에서의 재현부(recapitulation)의 요점은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의 가장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에피소드 중 하나를 상징한다."
그녀는 더 나아가 "제9번 교향곡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가부장제적 문화를 만들었던 추진력이 가장 명확히 표현된 작품이 아닐까"라고 쓰고 있습니다.
매클러리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먼저 베토벤의 애호가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럼 베토벤이 강간 살해범이란 말인가?"라고 주장하며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를 한다는, 문화 비평에 있어서 최전선에 있다는 사람들의 '자기망상적 궤변'을 공격하며 대중이 왜 현대의 사상가들을 신뢰하지 않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사건이라고 논박했습니다. 그러나 매클러리는 단 한 번도 문자적 의미 그대로 "베토벤은 강간 살해범적 멘탈리티를 가졌다"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토벤 애호가들의 이러한 비판은, 다른 평자의 표현을 빌자면, 약간은 초예민(hypersensitive)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비판은 좀 부당하죠. 매클러리는 다만 베토벤의 음악으로 표상되는 서양 고전 음악의 '남성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지, 베토벤 개인을 공격할 뜻은 없던 것으로 보이니까요. 다만 이른바 서양 음악에 있어서의 고전적 형식의 완성으로 상정되는 베토벤의 형식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 매클러리의 진심이었을 겁니다.
매클러리의 이러한 주장-거칠게 요약하면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은 제1주제 그룹이 다시 자신의 '자아'이자 남성성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간에 만나는 제2주제 및 여타 그룹들을 '강간'하고 '교살'하는 형식이며 이것은 남성우월주의와 식민주의의 음악적 표현이라는 것'에 대한 보다 정치한 비판도 있어왔습니다. 가령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평론가인 찰스 로센(Charles Rosen)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매클러리가 동원했던 수사인 '강간범의 강간 살해 행위'는 가혹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러한 수사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1악장에서는 가공할만한(extraordinary) 어떤 것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매클러리의 성적 폭력 묘사는 한 수사법으로서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문제점은 모든 상징은 과도 단순화(oversimplification)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19세기의 음악 평론가들이 아직 음악적으로 단련되지 못한 대중에게 음악을 소개할 때 빈번히 사용했던 여러 메타포들처럼 바로 그렇다는 점이 문제이다. 내게는 9번 교향곡 1악장의 종지부가 좌절된 에너지의 분출로 들리지는 않는다. 허나 조성에 있어서의 완벽한 합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소 변칙적인 방법을 베토벤이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수잔 매클러리는 저급한 말 그대로의 비난에서부터 정치하고 세심한, 학술적 비판에도 많이 노출됐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페미니스트 음악학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앞서의 그 책, '여성적 종지부'를 뜻하는 'Feminine Endings"란 책 역시 여성주의적 문화비평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지요.
전 매클러리를 둘러싼 논전의 안과 밖을 살펴보는 와중에서, 매클러리의 의견이 경청할 만한 것인가의 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초월적'이라고 '비정치적'인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히,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음악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고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학문적 연구 성과들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물론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제 애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실 매클러리 역시 "이제부터 베토벤 좋아하지마!"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힘들여 연구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매클러리가 한 말을 말미에 붙여둡니다. 나름대로 시사할 만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과 함께 생활합니다. 내 작업은 어떻게 음악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도 음악을 사랑하는 한 방법입니다."
"음악을 사회적 의미망으로부터 벗어난 지고하게 의미 없는(sublimely meangless) 행위로 보기보다는 나는 음악을 우리가 우리의 느낌과 욕망, 우리 자신의 주관성을 인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수단으로 보기를 주장합니다. 물론 그것이 은밀하게 작동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낭만적 초월이라는 다소 신비한 개념에 의해 가려져버리고 무시되어버리는 음악의 정치적 작용은 그렇게 무시되어버리기엔 너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s. 매클러리가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op.132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관심 있으신 분은 이 책 구해서 읽어보십시오. 슈베르트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분석도 흥미진진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