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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감상] 영원한 전쟁 the forever war

영원한 전쟁. by 조 홀드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의 대항마라고
들어왔던 <영원한 전쟁>.

언제나처럼 결론부터 말하자면 훌륭한 작품.
<스타쉽 트루퍼스>에 대한 일종의 대응이자 패러디인
작품은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

먼저 하인라인이 채택한 '강화복' 시스템을 채용하는데
사실 이건 하인라인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겨지고
이후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지구가 아닌 곳의 지상전에서
이 시스템을 채용하니 별 다른 설명은 필요없을 듯 하다.

그리고 스토리 전개 또한 유사하다.
주인공 만델라(난 당연히 넬슨 만델라를 떠올렸는데
사실은 히피인 주인공의 부모가 '만다라'로 하려다
스펠링을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는
작품의 서두에서 일병으로 시작해 마지막에 소령까지 진급한다.
<스타쉽 트루퍼스>의 주인공 역시 무지막지하게 빨리
진급하는데 두 작품의 진급 배경은 약간 다르다.
전자는 '콜랩서에 의한 시간지연'에 따른
'시간차'에 의해 빠른 진급을 얻어낸다.
콜랩서란 것은 일종의 웜홀인데 하나의 콜랩서로 들어가면
다른 콜랩서로 나온다는 식이다. 이 때 이 이동은 거의 '0'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뤄지는데 이동 거리는 수백 수천 광년까지 된다.
이 말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에 따르자면 지구 상의 인간들이
겪는 수십 수백년이 콜랩서를 통해 이동하는 사람의 주관적 시간
관념에서는 고작 몇 주 혹은 몇 달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상대성 이론에 따라
지구에서의 시간은 역으로 흘러야 마땅하지만 이 부분만은
작가의 설정 혹은 나의 지식 부족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천체물리학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시기를)
만델라가 첫 전투를 경험하고 왔을 때 지구는 이미 200년이나
흐른 후다. 재미있는 것은 무자비한 복리의 혜택에 의해
만델라가 두 번의 전투를 끝마쳤을 때 그의 재산은 5억 달러가 넘는다.
물론 지구 측에서는 '헤븐'이라는 재활원을 마련하고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매기는 훌륭한 방책을 통해 그 돈을 다시 지구로 유입시킨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생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자동으로 진급이 된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해 하인라인은 열렬히 옹호했다고 한다.
반면 조 홀드먼은 그때 베트남 전에 참전 중이었다. 이 작품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반전(返戰)소설이다.
사실 하인라인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서 보수파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읽는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느낀 점은
전쟁의 무상성, 인간의 무상성이다. (참 역설적이다)
하인라인의 작품은 철저하게 그가 구상하는
'정치적 유토피아'의 이데올로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반면에
홀드먼의 작품은 '반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마도 그 정치적 유토피아의 유지를 위해 전쟁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는 점이 하인라인의 보수적 정치색을 드러내주는 점인가보다.
(난 그렇게 읽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들로 추측컨대...)

<스타쉽 트루퍼스>를 다시 읽으며 하인라인의 우파적 측면을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런 발언은 무의미하므로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아주 하드한 SF란 점에 있다. 이 말은 이 작품이
아주 과학적으로 엄정한 기준 하에 쓰였다는 뜻이다.
(제발 SF란 단어에서 우주선끼리 레이저나 팡팡 쏴 대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떠올리지는 말아주기를 바란다)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제외하고 이렇게 과학적 이론에
입각하여 쓰여진 글을 본 적이 없다.
(쿼런틴은 양자 역학이 주소재인데 사실 과학적 설정은
거의 이해 못한 채로 읽어나갔다.)
이런 류의 과학적 엄격함은
사실 SF의 주 독자층이 추리소설의 주 독자층과 마찬가지로
중산층 이상에 몰려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단순히 과학적 이론의 적용에 그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정치 그리고 인간 자신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SF는 확실히 부르주아 층에 어울리는 문학인 것이다. (나 자신이 그
부르주아 층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과학적 엄정성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소프트하다. 전쟁이란 것은 무의미하며 단순히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 불능에서 시작되는 그런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나 대단한 철학적 고찰이 없어도 작품을 다 읽으면
이를 수 있는 결론인 것이다. 그러나 최신 현대 물리학 이론을
이용하여 다양하고 치밀한 설정을 해놓는 것은 역시 크나큰 매력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나름의 로맨스이다.
SF 소설 중 가장 흥미로운 로맨스물은 역시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 the door into summer>이다.
이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할 생각이 없으나
관심있는 분은 나에게 직접 요청하시면 빌려드리도록 하겠다.
이 작품은 절판되어 희귀물이 되어있다-_-
어쨌거나 SF 소설들에서는 이상하게도 예외없이
로맨스가 시간여행 혹은 시간차와 관련하여 발생한다.
<여름으로 가는 문> 역시 그렇고 수다쟁이 코니 윌리스 아줌마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키스 신은 내가 여태까지 읽어 온
그 어느 책의 키스 신보다도 감미롭다. 무려 '73년' 동안 키스를 하니 말이다.
<영원한 전쟁>은 말했듯이 시간 차에 의해 각자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데 그 때문에 지구인과 외계인과의 첫 전투부터
마지막 전투까지 모두 경험하는 만델라는 무려 1100년을 넘게
(물론 1100년이라는 시간은 지구에서 흘러간 시간이고
만델라 자신이 경험한 시간은 5년여 정도 밖에 안 된다.)
살아가면서 매리게이와 계속 사랑한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의 1100년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로맨틱하지 않은가.

굉장히 재밌게 읽었지만 이렇게까지 잡설이 길어질 줄은 몰랐다.
최근 내가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느끼는 가장 큰 곤혹은
시덥잖은 지식으로 자꾸 작품을 분석하려 든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그냥 읽고 보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흥을
얘기하지 못하고 감상하는 내내 나 자신을 괴롭히며 뭔가
할 말을 만들어내려하는 못된 경향 말이다.

사실 그래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회의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