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나라 교사들은 전세버스를 빌리지 않으면
아이들을 아무데도 데리고 갈 수 없는 것으로 안다.
가난하던 70년대, 전세버스를 빌릴 형편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
오히려 더 멋진 교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방학을 이용하여 동해안 해수욕을 떠난다.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는 아이를 학교에 모이게 하여 직접 인솔하여 데리고 다녔지만
일부의 교사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멋진 교육을 했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교사는 어디에서 몇 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어디까지 가라.
거기서 영덕행 버스를 바꾸어 타고, 또 영덕에 내려서 울진행 버스를 타고….
16절 갱지 한 면이 부족하여 뒤쪽에까지 깨알같이 등사하여 주었다.
더러는 약도를 그려 주기도 하였다.
2박3일 동안 야영할 준비물 역시 16절 갱지 한 면 가득 등사하여 주었다.
그러나, 게으른 교사는 한 마디면 다 되었다.
"7월 25일 오후 3시 영덕 대진 해수욕장에서 만나자."
게으른 교사 반의 아이들은 영덕 대진 해수욕장이 어디에 있는지,
몇 시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차를 타야하는지 사회 부도를 펴놓고 길을 찾고,
버스 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차편을 알아본다.
몇 시에 출발해야 오후 3시까지 도착이 되는지 계산을 하고
더러는 새벽에 버스를 타는 아이도 있고,
외삼촌 트럭을 얻어 타고 가는 아이도 있다.
더러는 엉뚱한 곳으로 잘못 가서 되돌아오다가 늦은 아이도 있고
아이들의 구구각색인 경험을 이야기하느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수학 여행도 그랬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교사는 커다랗게 만든 노란 깃발을 높이 들고 앞장서서 걷으면서
학급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한다.
아이들이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아이 중에는 "수학 여행 가서 본 것은 노란 깃발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으른 교사는 역시 한 마디면 되었다.
"오후 3시에 돌아간다. 각자 취향대로 흩어져서 구경하고 3시에 여기 모이도록 하자."
게으른 교사 반의 아이들은 둘씩 셋씩 친한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골라가면서 구경하게 된다.
소심하였던 필자는 교사 시절 그런 멋진 교육을 해보지 못했다.
생각은 있었지만,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서 한 번도 멋진 교육을 해보지 못했다.
일요일에 등산을 가도 학교에서 모여서 함께 다니는 친절한(?) 교사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게으른 교사의 멋진 교육을 해보고 싶다.
우리 학교 전교생으로 하여금
"7월 25일 오후 3시 영덕 대진 해수욕장에서 만나자."라고 해두고
직원들만 영덕까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어물어 노선버스를 타고 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해수욕장까지 승용차로 자녀를 실어 나르면서 학부모들은,
"미친 짓 한다"고 욕할 것이 뻔하다.
버스터미널 대합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버스 출발시각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졸기도 했던 그 일들….
비위생적이고 비계획적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일을 통하여 인내력을 키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을까?
승용차나 전세버스에 아이들을 싣고 다니는 여행,
어디로 가는지 관심도 알 필요도 없는 아이들,
우리는 지금 몸통은 없고 머리만 있는 아이를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 현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3-11 21:4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