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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산호

어느새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이야기.
내 마음 속에서 조심스레, 혹은 거침없이 꺼내놓는 이야기들의
주어가 내가 되고, 목적어마저도 내가 되고, 그렇게 마음 한가운데에서도
기억 한가운데에서도, 심지어 언어의 한가운데에서도
나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잊는다는 것이다

아마 2004년에 썼던 글의 일부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때 죽은 산호를 가끔 생각한다.
몇 번이나 적었지만 산호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우리 반에 있는지도 몰랐던 같은 반 여자아이였고, 어느 날엔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쯤이었나
산호가 결국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었던 때의 기억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생생한 것은
그 다음 해 아마 어린이 날이었던 것 같은데 산호 어머니가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에게 연필을 한 세트씩 선물로 보내왔던 때의 기억이다.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때 내가 울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산호가 어떤 아이였는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그 순간만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고
평생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를 울게 하는 것은 산호란 아이가 아니라 그때 그 선물을
보내주신 산호 어머니다. 아마 자신의 딸이 잊혀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토록 소중하던 딸이 함께 지냈던 모두에게서 잊혀져
몇몇이 가족들에게만 기억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산호가
죽었다는 그 사실보다 더 슬프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산호를 잊지 않는다.
물론 그 아이를 잊지 않은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대학교 때 죽은 내 친구보다도
내 기억에 자주 찾아온다.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그 날
지하철 역에서 그토록 울었음에도, 산호에 대해서는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러함은 나를 울리는 것이
어떤 기억이 아니라 산호 어머니의 그 바람 때문이기 때문이리라.

가끔 생각한다.
산호 어머니는 산호를 얼마나 자주 생각할까.
산호 어머니는 누군가 산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산호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건 어쩌면 거짓말이다)
만약 내가 기억한다고 해도 아주머니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결국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또 생각해 본다.
산호 어머니는 어쩌자고 연필 따위를 줘서...하고.
어쩌면 나는 그때 그냥 연필이 생겨서 마냥 좋아했던 것만 같다고.

잊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산호 어머니는 그때 누군가는 산호를 계속 기억해주기를 바랐을 테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
나 말고 누군가 또 산호를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터져나오는 울음을 그칠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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