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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중도를 자처한다.
꼴통보수를 말하며 스스로를 진보좌파라 말하는 이는 흔치 않다.
그러나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는 하나의 대립쌍으로써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중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극단적 좌우가 먼저 필요하고
그 다음에 극단적 좌우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하는
유보적 성향의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특히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은 '꼴통보수'에 대해
논하면서도 자신은 '중도'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좌파라 생각지도 진보라 일컫지도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은 '옳은 것'이기 때문에
우파나 좌파 혹은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들에게 있어 좌파는 우파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을 위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치 스펙트럼은 '보수꼴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중도로 남겨놓을만큼 넓지 못하다.
보수 진영에서 보면 한나라당 너머의 우파는 조갑제 같은
몇몇의 이상한 사람과 몇 개의 단체 정도밖에 없다.
진보 진영 쪽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너머의 스펙트럼 역시 미미하다.
제대로 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있고 그 외의 집단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한나라당과 나머지 사이에 깊은 골이 있어
애초에 정치적 스펙트럼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한나라당 지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자면 자신이 보수로 규정한 집단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중도로 판단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정치가 확립된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중도'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준을 그 사람이 속한 당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삼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예컨대 이 사람이 민주당이라 뽑거나 뽑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보적 입장에서 당시 논의되는 주요 사안에 대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역 더 나아가 국가에 어느 쪽이 더 유리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나 공화당 지지자라고 해서 어느 쪽이 유리한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던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느
한 쪽을 명백히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후보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공화당만큼이나 보수적 성향이 뚜렷했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철학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미국의 민주당과 비교해서는 어떤가?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미국의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크게 진보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요컨대 미국의 정치적 중심 자체가 한국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진보좌파로 분류될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도'라는 것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중간 부분에서 유보적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말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물론 미국 민주당을 보수꼴통으로 분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적절해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결국 중도란 건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사안별, 시기별, 인물별로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을 때
성립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대부분 극명하게 갈린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민주당이, 이번에는 민노당이
옳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특별하기 때문에 기존에 이쪽 진영이
주장하던 대로 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이 좌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진보적 뒤에도
'중도'라는 말이 달린다. 우리가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은 보수꼴통이고, 더 진보적인 사람은
진보좌파가 된다. 대부분 단 한 번도 판단을 유보해본 적이
없음에도 우리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를 자처한다.
보수가 꼭 옳지도 않고 진보가 꼭 옳지도 않음은 분명하지만
'중도'라는 말이 부리는 마력은 어쩐지 좀 수상하다.
당신이 한나라당을 열렬히 지지한다면 당신은 분명 우파다. 보수다.
당신이 민노당이나 전교조를 열렬히 지지한다면 당신은 분명 좌파다. 진보다.
(놀랍게도 보수는 의견이 다 똑같고, 진보는 진보대로 다 똑같다)
당신이 중도이기 위해서는 정치에 철저하게 무관심하거나
사안별로 두 진영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정치에 실질적으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면서도
'어느 편을 들 것인지'는 매번 너무도 분명하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를 중도로 규정한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째로 우리가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믿고 있거나
둘 째로 실질적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모두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해당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 자신 또한 '보수적 성향을 띤 중도'다.)
모두가 정치적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 때,
(그러니까 결국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합리적 판단이란 것을 할 때)
'중도'란 것이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성향에 의해 즉각적 판결을
내리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것이 아닐 때, 그때에서야 우리 정치는
조금이라도 제대로 굴러갈 것이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정확히 들어맞는 대립쌍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역사적 상황이 '좌파'란 말에 부정적 성향을 담아버린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스스로를 '좌파'라고 하지않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아니, 아쉽다.
여담 1.
제대로 된 보수 진영이 나오려면 먼저 제대로 된 진보 진영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아쉽게도 썩은 물은 쉽게 정화되지 않을 뿐더러
자정 작용은 더더욱 요원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중도'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반미', '친북'이
진보와 당연스럽게 연결되는 현실도 바꿔야만 한다.
'반한나라당' 시위에 왜 항상 '범민족' 단체가 중심이 되는지
스스로를 '진보적 중도'라고 믿는 사람들은 의문시 해봐야 한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소위 '보수꼴통의 전횡에 항의하는'
집단들 중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 집단들이 왜 사안과 무관하게
'북한'에 대해 언급하는지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 노동자의 권리, 평등교육과 대북정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담 2.
진보 진영에서 조갑제의 말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
생각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아무도 조갑제의 말을 인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갑제를 좋아하는 건 진보 측이다. 그가 하는 말이 대부분
터무니 없다는 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그를 잘라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보 진영은 아무 의미 없는 그의 말을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는 점에서
똑같이 한심하다.
조갑제가 누군지, 무슨 말을 했는지 보수 성향의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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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