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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오랜만에 끄적끄적

언젠가 내 기분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올라올 수 없었듯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더이상 뭔가 적을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더이상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
그토록 내가 똑똑하다고 믿었던 시절에 나를 힘겹게 만들었던 모든 것을
망각함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영영 떠나버림으로써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나는 생각하기 싫은 것들은 더이상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기억하지 않으며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름조차 잊는다.

언제나 쉽게 상처받고 허덕이며 살아가던 나 자신을 그리워하던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시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임을.
그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책 대신 핸드폰과 더 친해질 것이란 것도,
봉사활동을 이토록 오래 쉬게 될 것이란 것도,
결국 이렇게 쉽게 타인을 위해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직장들 중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란 것도.

나는 내가 오래도록 더 고민할 것이라 믿었다.
남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예전처럼 끝없이 부정하고
내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더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 믿었다.
어느날 더이상 아프지 않게 됐을 때,
더이상 술을 마시고 집에 와 울먹이며 글을 쓰지 않아도 됐을 때,
여기 남기는 글들에서 아무런 진심도 아픔고 고민도 느껴지지 않게 됐을 때
나 자신이 불행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기에 감히 말하지만 조금도 행복할 수 없었고
행복해지는 방법조차 몰랐던 그때의 나를 난 더 좋아한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훨신 더 많았던 그때
나는 더 많은 글을, 더 좋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글을 남기기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글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예전의 내가 고민하던 것들이 이토록 작은 미련조차 없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들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빈곤', '환경'이란 게시판을 만들었던 그때가 마지막으로
내가 나 자신을 붙잡으려 발버둥쳤던 순간임을 이제는 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그토록 부끄러웠던 시절이야말로,
아주 작은 것들에 그토록 쉽게 울 수 있었던 시절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었던 순간임 또한 이제는 안다.

알고 싶다, 여전히 미치도록 알고 싶다 모든 것들을.
예전만큼 분노하고 증오하지 않으면 예전만큼 진심일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예전만큼 울지 않으면 내가 쓰고픈 글을 쓸 수 없음 또한 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아는 것을 두려워하고 더 느끼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이상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이 두렵다.

문득 여름 휴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어졌어.
아니, 가지 않으면 안될만큼 생각보다 지쳐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책이 읽고 싶어. 너무나. 너무나.

나는 내가 오래도록 더 고민할 것이라 믿었다.
남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예전처럼 끝없이 부정하고
내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더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 믿었다.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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