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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게 두 표를 행사하고 투표소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어떤 아저씨가 내게 작은 종이를 주었다.
투.표.확.인.증....
처참한 기분...
오죽하면 이런 우스운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게 됐을까.
세금을 써가면서까지 투표를 독려해야만 하는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최종투표율 46%...어처구니 없는 수치다.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의 자격이 없다.
어느 술자리건 어느 사이트 건 들려오는 시끄러운 정치관련 이야기들이
무색하도록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관심이 없다.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라서...라는 비겁한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치사한 변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며 부끄럽지 않은 걸까.
모두들 말한다.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국회의원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여당은 보수꼴통이고, 야당은 빨갱이라고.
그래, 그리고 투표를 안 한 당신은 그들이 그 자리에 놓이는 것을 방관했다.
그러니까 부탁한다. 적어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비겁한 변명일랑 하지 말아달라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삼가 달라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건 바보들이 도둑놈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 자리에 계속 있도록 당신이 방관하고 있기 때문임을 기억하라고.
사실 화가 나는 것은 46%라는 수치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진저리 나도록 들려오는 정치 얘기와 그런 자신들의 정치 소신을
절대진리인양 설파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무지한 방관자에
불과함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찍은 후보가 내가 찍은 정당이(사실 무효표를 던졌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표를 던졌고, 내 당연한 권리와 의무
-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그 가치와 권리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사소하지만 피해서는
안 되는 노력 - 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여러 번 떠들었다시피 민주주의와 선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나 선거 같은 것은 옳은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결정하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 선거구의 대표는 우리 선거구
사람들의 방향성을 대변하고, 우리 나라의 대표는 우리 나라의
방향성을 대변할 뿐이다. 설사 내가 절대적으로 옳은 길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혹은 누군가 그 길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나 그나
선거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방향성에
아주 작은 점을 찍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점을 찍어야 한다. 점은 위치만 있을 뿐
공간을 점유하지 않지만 그런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을 만들고
하나의 선 역시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지만 그 선들이 모여 면적을 차지한다.
하나의 표를 행사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 없지만 그 하나의 점이 모이지 않으면
제대로된 모양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모두들 계속 떠들어 댈 것이 분명하다. 내일도 모레도.
그 수다 속에는 분명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소신 또한 섞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신을 비웃어 줄 테고 증오할 테다.
작은 점 하나조차 찍지 않고 이런 모양은 말도 안 된다고
또 다시 분노하고 떠들어 댈 그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테다.
요즘 원칙주의자라는 말을 부쩍 많이 듣는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법을 철저히 지키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환경오염에 일조하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지적받는 일에
화내지 않는다. 사실은 내가 그런 잘못들을 저지를 때마다
지적해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부끄러워하는 이가 없다. 두려워 하는 이도 없다.
그런데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비겁한 변명과 이해불가능한 논리만이 들려온다.
나는 더이상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듣고는
단지 내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의심하지 않겠다.
단지 투표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서는 '스타쉽트루퍼스'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간다.
투표확인증이라는 우스운 종이 쪼가리는 내게 우주괴물만큼이나 낯선 무언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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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