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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우주

하나의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의 우주가 열린다. 마치 빛이 파장도
입자도 아니고 그 자체로 존재하듯 생명은 無에 기인하지도 않고
有에 기인하지도 않는다. 큰 울음과 함께 태어나는 인간의 아이에게는
그만의 우주가, 이슬 맺힌 풀잎 위에 사뿐히 올려진 알에서 깨어나는 작은
벌레의 유충에게서는 그만의 우주가 창조된다.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갖고 있다. 매순간 수없이 많은 우주가 창조되고
또 사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주의 주인이자 다른 생명의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한한 동시에 아주 사소하다. 우리는 전부인
동시에 無다. 우리는 자신의 우주의 모든 것인 동시에 다른 생명체의
우주에서는 각자의 크기를 갖는다.

모든 생명체의 우주는 겹쳐져 있다. 길에서 스쳐가는 다른 이의 우주에
나는 짧은 순간 나의 내음을 내뱉고 옷깃을 스치고 때로는 어깨에
작은 충격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우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어깨를 스친 사람은 나의 우주
안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 사람의 우주에 나의 존재란
존재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우주에 타인을 담는다. 우리의 우주는 무한하기에
역시 무한한 타인의 우주 또한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무한에 담긴
무한 또한 不可知의 영역이기에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언제까지나 그대로 충만한 나의 우주이면서 세상 모든 생명의 우주 또한
담고 있는 나의 우주이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걸까.
시간이 끝날 때, 잊혀질 때 혹은 죽음이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을 때
하나의 우주가 닫힌다. 그 언제가 무한한 하나의 우주가 순간 열려버렸듯.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어찌 그리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까.
이해했다면, 알고 있었다면 또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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