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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다시 쓰기 혹은 다시 읽기 # 1

아래 말한 것처럼 독후감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예전 게시판 글들을
읽고 있다. 게시판을 갈아치웠던 이유는 내가 감정을 폭발시키며
쓴 글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인데 천천히 읽고 나니 지금의 내가
쓰는 글들이 훨씬 부끄러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잊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금 깨닫는다.
비가 엄청 내리던 어느 날 굳이 비를 맞으며 걸었던 나,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내 홈페이지에 자주 들렀던 사람들,
(아는 사람 중엔 윤희가 종종 들렀었다는 것이 제일 신기했고,
더 신기한 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몇 명 존재했다는 사실.
아마 친구의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 정도 되었을 듯,)
당분간 천천히(라고 말하며 휙휙 넘기는 중) 예전 글들을 읽어보며
내가 기억해야 했음에도 잊어버렸던 내용이 있는 글들을
다시 올려둬야겠다.
잊었던 기억들만큼이나 잊었던 나를 찾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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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책꽂이 위에는 아다치 미치루의 H2 서른 네 권이
제멋대로 쌓여 있고 그 앞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화장실에서 책 대신 이 만화책을 잡고 보고는 한다.
대충 이틀에 한 번씩 책을 바꾸곤하는데 책꽂이가 꽤 높으므로
가장 바깥 쪽의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그런데 가끔 바깥 쪽 책들이 모두 읽은 것인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가장 적게 읽은 것도 대여섯번은 될테지만
그나마 덜 읽은 것을 꺼내려고 할아버지 영정을 살짝 앞으로
당긴 후 뒤의 책을 꺼내었다.
할아버지 영정을 조심스레 제자리에 놓으며 또 같잖은 애교를 떨었다.
생전 해본 적 없는 귀여운 척 하는 목소리로, 혀 짧은 소리로
"할아부지", "할무니"하면서 남들이 보면 어처구니 없어할
그런 애교를 잔뜩 떤다.
만화책을 꺼내려 두 분 영정을 움직일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곤 한다.
학교에 가려고 교대역을 향하는데 할머니랑 공기 놀이를 했던
것이 생각나 갑자기 울컥해버렸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 언제나
공기 놀이, 쎄쎄쎄, 축구공 모양의 제일은행 저금통이 생각난다.
그리고 돌아가시던 날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에 혼자 방에서
울었던 그 날의 느낌들도...
학교에서 빈둥대다가 집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안녕히 다셔오셨어요"라고 꾸벅 인사하면 언제나 근엄한 표정으로
"안녕 못하다"라고 하시던 할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그립고 정감가는
말투지만 어리고 예민했던 손자에게는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곤
했는지 이제는 아실까...
할아버지가 단 한 번 용돈을 주신 적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5만원을 주셨을 때 나는 그 다음 날 바로 그 돈으로 인형과 꽃을 사들고는
여자친구와 만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 한 번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그렇게 써버렸다는 것이 참 죄송하다.
워낙에 엄한 집안이어서 나 또한 애교란 걸 배울 참이 없었는데
그나마 내가 애교랍시고 해본 기억은 언젠가 지방의 작은 유원지에
놀러갔을 때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라고 하고는 할아버지의 그 작은
어깨를 열심히 주물렀던 것 밖에 없다. 내가 해드린 것은 그거 하나
뿐이었던 것 같다.

그 만화책들을 어울리지 않게 두 분 영정 앞에 계속 놔두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두 분을 잊을까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보다도 더 드물게 두 분 얼굴을
떠올리면 너무 죄송하니까, 정말로 두 분 얼굴이 기억나지 않게 되면
두 분이 슬퍼하실까봐...
다시 또 혀 짧은 소리로 그 우스운 애교를 떨고 싶지만
막상 다시 하면 울어버릴 것 같다.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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