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소용없고 하나도 이쁘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진 건 정말 뭐랄까.
거추장스러운 일이예요.
엊그제는 머리카락을 들여다보다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 우울증에 빠져버릴 뻔 했어요. 하나도 소용없는데 하나도 버릴 수도 없고!
머리카락이 속눈썹 반 만큼만 되어 주면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없을 텐데.
내가 아무리 울어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 이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언젠가 잠이 너무 안 와서 지붕위로 올라가 기왓장에 쌓인 먼지를 쓸고 있었는데-
막막 ET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을 건너서 폴짝 뛰어내려온 고양이예요.
길을 잃은데다가 어리고 가여워보이는 새끼고양이는 보기보단 좀 거만하고 발톱도 자주 세워요.
몇 번 인가 초코우유 때문에 혈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내 얼굴에 발톱 자국을 몇 개 냈어요.
그러면 나는 고양이 발톱을 깎아서 땅에 묻고 딸기젤리달콤쥬스를 줘요.
내 상처가 많이 깊을수록 발톱은 빨리 자라요-.
딸기젤리달콤쥬스를 많이 줘서 빨리 자라는 건 아녜요.
사실 딸리젤리달콤쥬스 따위는 줘도 안 줘도 빵 개두 상관이 없다니까!
하여간 많이 자란 발톱은 잘 잘라서 보관하고 있다가 고양이가 또 발톱을 세우면 방패로 써요.
이쁘고 가여운 새끼고양이는, 좀 거만하고 발톱을 세우는 새끼고양이는, 총을 하나 갖고 있어요.
가끔 자기 머리를 겨냥해서 총을 쏘는 척 하는데, 얼마 전에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어버리자
나를 향해서 총을 빵- 하고 쏴주었어요.
거울을 보니 뇌수가 마구 흐르고 피도 분수처럼 마구 뿜어져 나오는데 그게 너무 우스워서
- 나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하고 또 웃어버렸어요. .
아유 정말로 숨이 차서 넘어갈 정도로 배아프게 웃었다구요.
그런데 그 고양이는 눈 하나 깜빡 안 해요. 같이 웃어주지도 않아요.
뇌수가 고양이 발 밑으로 마구 흐르는데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는 그냥
-그 딴거 나랑은 상관 없자나!
하고 하품을 한 뒤 폴짝폴짝 뛰어서 다른데루 슝 하고 가버렸어요.
하나도 소용없고 이쁘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진 나는
그냥 언제부턴가 거울을 볼 때는 머리카락을 가려요.
아악! 근데 얼굴은 더 심하자나! 정말 우울증에 빠질 것 같애요. 으웩
그런데 얼마 전에 새끼고양이가 다가와서 머리채를 확 잡더니
눈도 깜빡 하지 않을 사이에 눈도 깜빡 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확 뽑아버렸어요,
아얏! 근데 하나도 안 아프다!
머리카락은 고양이가 잘 땋아서 목걸이처럼 목에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감으니까 딱 맞아요.
나는 그냥 맨들맨들해진 머리를 쓱 만져보고는 거울을 총으로 빵 하고 쏜 뒤 다시는 거울따위 보지 않아요.
흉칙해. 하지만 맨들맨들한 머리는 만지는 재미가 있어요.
고양이는 목에 감은 내 머리카락을 발로 한번 쓱- 쓸어보고는
흥! 하고 거만하게 꼬리를 흔들며 내 앞을 지나다녀요.
알록달록한 롤리팝 사탕을 찢어서 안에 향수를 뿌리고 먹으면 맛있어요.
이제 잠이 안 오면 창문을 열고 온몸에 별사탕을 뿌린 뒤 하늘을 날아요.
그러다가 졸면 그만 시내 한복판에 아주 크고 멋진 건물 맨 위에 달려있는 안테나에 옆구리를 찍히거나,
어느 시골집 닭장에서 알 낳는 암닭의 엉덩이를 팍 하고 깔아뭉개버리기도 해요.
가끔 운이 좋으면 별똥별이 떨어질 때 딱 타고 바다도 간다구요.
또오 나뭇잎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나면 별 모양 병에 담아둬요. 나중에 사탕을 담글 때 요긴 하다구요.
달빛을 쐬러 나가면 새끼고양이는 늘 나를 따라와요.
그리고 어느새 내 어깨 위에 폴짝 하고 올라와있어요.
언젠가 보름달이 뜨는 날 우연히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헉! 고양이 눈에 비친 내 머리카락이 발목까지 자라나 있자나요!
아, 달빛을 쐬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래도 고양이가 빵- 하고 쏴준 총알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내 뇌 속에 박힌 총알에서 마구마구 이쁘고 소용 있는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있는 거예요.
+달빛에비친게뭐야네눈빛이야내눈빛이야응?길이나잃고응?
달빛이면충분한데왜그래정말.
++미스테리스릴러공포특급에스에프판타지어드벤처로망,
총으로쏘지않아도맞출수있어-얘! 달빛이면충분해.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23 22:37)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4-28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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