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하게도 영화화된 소설이 있으면 영화는 안 보고 소설만
읽게 된다. 쥬라기 공원과 스타쉽트루퍼스 같은
한심한 영화들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그냥 우연이다.
굳이 더 따져보자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탓이다
(그러고보니 영화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데니스 루헤인...<살인자들의 섬>을 읽고 이 작가에 반했지만,
내가 엄청 좋아하는 팀 로빈스가 주연이었지만 보지는 않았던
영화 <미스틱 리버>의 원작자가 데니스 루헤인인 줄은 몰랐다.
원래 사람 얼굴이나 이름 외우는 거에 약하다 보니 ㅡㅅㅡ
아무튼 도서관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미스틱 리버>라는 제목을
봤을 때 눈이 살짝 번뜩였고 데.니.스.루.헤.인. 이라는 작가 이름을
본 순간 주저없이 책을 뽑아 들었다.
팀 로빈스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프롤로그부터 세 아이가 등장한다.
이 세 아이가 주인공이다. 프롤로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후
셋 중 하나의 딸이 살해되고, 다른 하나는 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되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이제 독자는 궁금해 한다. 과연 그가 범인일까.
독자들은 그에게 알리바이가 없다는 것을 안다.
소설 초반부에서 피에 절어 있는 셔츠 차림으로 집에 돌아왔던
것을 안다. 그가 죽은 소녀를 심상찮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안다.
...
언제나처럼 스토리는 길게 적지 않겠다.
사실 좋은 작품은 스토리를 길게 적을 필요가 없다.
일단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직접 읽었으면 하기에 스토리를 적기가
꺼려지는 것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좋은 작품이란
좋은 스토리와 플롯을 베이스로 그 이상의 것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읽은 후 남는 것은
느낌과 생각이지 결코 현란한 줄거리가 아니다.
<미스틱 리버>가 안겨주는 것은 우리 위에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거의 무게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를 궁금해하던 독자는
그 수수께끼가 풀려가면서 과거란 것의 묵직함을 깨닫게 된다.
수수께끼는 결코 단번에 모두 풀리지 않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풀려 나간다. 수수께끼의 단계 하나마다 과거의 나무 판자가 머리
위로 떨어져내리고 그렇게 차례차례 모든 나무 판자가 무너진
후에 우리는 느낀다, 생각한다. 우리의 과거란 이토록 무거웠다고,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진 과거가 아닐지라도, 결코 우리의 탓이 아닐지라도
그 과거는 언젠가 돌아와 우리를 덮친다고.
<미스틱 리버>는 철저한 과거의 이야기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변화시키고 묻어버리고 잊어버리지만
사실은 어디엔가 그대로 남아 되살아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작가가 돌려주는 대답은 그다지
희망차 보이지 않는다. 폐수로 오염되어 가는 미스틱 강처럼
우리는 그저 그렇게 썩어가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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