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3년 10월 28일 초연된 비창 교향곡의 악보 1면
이 교향곡의 제목인 <비창>은 1893년 10월 28일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지휘로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의 러시아 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다음날 동생 모데스트와 의논 끝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처음에 모데스트가 “비극적(Tragique)이 어떨까” 하는 제의에 표트르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다가 모데스트가 “< 비창(Pathetique) > 이 어떨까요?” 하고 말하자, “됐어! 모디! 그거야, <비창>으로 하자.”
이것이 <비창>이라는 표제가 붙게 된 유래입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는 5남1녀 중 둘째. 표트르 뒤 오른쪽이 모데스트.
“고통(고뇌)스러움”을 의미하는 “비창(Pathetique)”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곡을 작곡하면서 차이코프스키는 조카인 다비도프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의 새 교향곡에는 표제가 있는데, 그 표제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수수께끼가 될 만한 표제다. 그 표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인데 나는 여행 도중에 머리 속에서 작곡하면서 여러 차례 울었다…”
이처럼 이 표제는 차이코프스키가 설명하지 않는 한, 아무도 알 수 없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와 관련해 3가지 관련설이 있는데,
(1) 그가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그 스캔들이 발각되어, 법률학교의 동창생들로부터 자살을 강요당했는데, 아마 이 곡은 그러한 강요에 대한 분노와 비통한 각오의 표명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적어도 비창 교향곡을 들으면서 그러한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법무성 시절의 젊은 차이코프스키
 
동생 모데스트와 조카 보브(블리디미르) 다비도프
(수정) (세르게이 대공도 동성연애자였지만 차이코프스키와의 관련성은 언급이 없고 흔히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와 조카인 보브(블라디미르) 다비도프와의 동성연애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차이코프스키의 일부 편지 내용을 인용하면서)
근래에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동생 모데스트와 조카 보브(블리디미르) 다비도프와의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연애 스캔들로 인해 그당시 엄한 러시아 법에 따라 사형 또는 시베리아 유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과 그런 소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률학교 동창생들로부터 "명예로운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차이코프스키가 위독했는데도 모데스트를 시켜 의사를 부르지도 않았고, 죽고 난 후에도 수많은 조문객들이 와도 콜레라라면 격리해야 하는데 하지도 않았고, 수많은 조문객들이 키스를 했는데도 콜레라에 감염된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와 측근들의 증언을 토대로 비소 중독에 의한 자살설 주장을 하고 있는데...그와 관련된 글을 여기 영문이지만 링크해놨으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차이코프스키 자살설 주장 글(영문)
이러한 부면을 부각시켜 만든 영화가 영국의 켄 러셀 감독에 의한 영화 <연인들의 곡(The Music Lovers)>(1971년)인데 시드니 쉘든 원작의 미국 미니 시리즈 <가시나무 새>에서 주인공 사제 역을 맡았던 리처드 챔벌레인이 차이코프스키역을, 글랜다 잭슨이 9세 연하의 악처 밀류코바역으로 나오는데, 모두 성도착적인 사람들로 난도질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2) 3년전인 1890년에 유일한 여동생(5남1녀 중 표트르는 둘째)이 죽고, 폰 메크 부인과도 그동안 13년간의 서신 교류와 경제적 지원으로부터의 단절로 인한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당시 폰 메크 부인의 장남이 재기불능의 병에 걸렸고 부인 자신도 결핵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프랑스로 요양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러한 개인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는 엄청난 단절, 상실감으로 상심하게 됩니다. 그러한 충격에서 오는 그의 병적일 만큼 내성적이고 우울한 신경질적 성격이나, 가정적으로 불우했던 그의 과거 생활과 결부해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나제시다 폰 메크 부인
이러한 면에서의 비창미를 부각시켜 <비창>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영화가 1997년 버나드 로즈 감독 소피 마르소, 숀 빈 주연의 <안나 까레니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 원작으로 사회적 파면과 상실의 공허함을 그리고 있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직면했던 경험과 유사성도 있어보입니다.
물론 예술가의 작곡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분신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이 <비창>이라는 말에는 더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3) 당시 러시아를 감돌던 봉건주의 하의 암울한 공기와의 관련설입니다.
즉 차이코프스키는 납덩이처럼 무겁고 숨막히는 공기 아래서 밑바닥 생활에 몸부림치고 있는 일반 민중들의 절망감과 비애, 죽음에 대한 공포, 또 그것을 벗어나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헛된 정열 같은 것을 이 곡으로써 나타내려고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지배적입니다.
그 당시 러시아의 역사를 훑어보면, 한때는 지구의 5분의 1을 영유하고 있었던 이 대국도, 명군으로 불렸던 표트르 대제나 에카텔리나 2세의 통치시대에조차, 국내에서는 항상 소란이 그치지 않아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었습니다. 귀족이나 정부 고관들은 유럽의 귀족이나 부호조차 놀랄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일반 대중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환경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말이나 소처럼 혹사하고 모든 자유를 속박했던 그 봉건농노제도가 19세기 후반까지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대제국의 내정이 얼마나 혹독하고 비참했었던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러가 “예술가는 시대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바 있듯이, 체호프도, 투르게네프도, 도스토예프스키도, 푸쉬킨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도 모두 이 불안의 시대, 암흑의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암담하고 어두운 터널을 뚫고 지나가듯한 문학성과 차이코프스는 연관성이 많은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예술가로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가 오늘날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 더없이 비참한 시대에는 오직 예술만이 이 무겁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주의를 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작곡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예민하고 섬세한 신경을 가졌던 차이코프스키가, 그 당시의 러시아의 암담하고 구원할 길이 없는 공기에 전혀 무관심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참고로, 다음 세대지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이러한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더욱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되는데, 특히, 러시아의 유명한 세르게이 에이젠스테인 감독의 1925년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라는 영화에서-1905년 전함 포템킨호의 수병들과 민중들의 반란, 특히 유명한 오뎃사 계단의 학살을 그린 영화로서, 몽타주(조합)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영화로도 유명하죠-배경음악으로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을 넣음으로(제 기억으로는) 이 음악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전함 포템킨> 중 유명한 오뎃사 계단의 학살 장면
이 곡이 초연된 바로 후인 11월 1일, 차이코프스키는 레스토랑에서 생수를 마셨는데, 그당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고 하지만, 저로서는 자살 행위로 보기보다는 극도의 감정몰입과 우울증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분별력을 잃고 마신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그가 죽음 따위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창을 초연하기 직전 모스크바에서 그와 만난 카시킨의 회상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과 작곡가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 하고 탐색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 곡에서 죽음의 예감, 산 자의 마지막 교훈을 찾아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만났을 때 그런 인상은 조금도 받은 일이 없다…. 그는 젊은 시절에 죽음의 두려움을 고민한 적은 있지만 교향곡 제6번을 쓸 무렵에는 그런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1893년 마지막 초상
 
아무튼 그날 밤으로 병상이 급변해서 의식을 잃었는데 콜레라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1893년 11월 6일 새벽 3시에, 그가 14살 때 어머니도 콜레라로 죽었듯이, 동생 모데스트와 조카, 충실한 개인비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53세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데드마스크
그로부터 12일 후에 이 교향곡이 재공연되었는데, 그때는 이 <비창>이라는 표제와 그의 죽음 때문에 청중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1악장> Adagio Allegro non tropo
느리게,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b단조, 4분의 4박자, 소나타 형식
처음 낮은 음의 현악기가 울리는 가운데 파곳이 어두운 음으로 짓누르는듯, 신음하는 소리처럼 나타납니다. 이 서주에 나타나는 주제의 소재는 이어 빠른 템포의 제1주제로 발전하면서 온갖 비애와 그의 운명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라든가 젊음에의 정열 등을 주의 깊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아련한 그리움과 휘몰아치는 노도와 같은 음의 홍수와 감정의 발산이 교차하는 느낌을 주는데 1악장의 제2주제는 정서적으로 친근감을 주고 있어 글렌 밀러 악단이 <별이 쏟아지는 밤의 이야기(Story of a starly night)>이란 이름으로 대중적으로도 크게 히트한 바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톨스토이 원작,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안나 까레리나>에서 솔티가 음악을 맡고 성페테스부르그필(구 레닌그라드필)과 연주한 비창 교향곡 1악장 주제가 주인공 안나 까레리나의 사회적 파멸과 자살로 이어지면서 흘러나오면서, 공허한 메아리처럼 귓가에 아련하게 젖어듭니다. 그 영화에서는 또한 백조의 호수 가운데 왈츠라든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흐르면서 벤게로프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모두 인상적인 연주로 기억되는군요.
<2악장> Allegro con grazia
빠르면서도 상냥하게
D장조, 4분의 5박자, 세도막 형식.
불안한 치밀감이 있는 선율이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타고서 첼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딘가 불안한 감이 넘쳐 흐르는데 이것으로 환상과도 같은 덧없는 인생의 유쾌함을 나타낸 기분이 엿보입니다.
처음에 아름다운 노래조의 제1주제가 첼로에 나타나는데 이같이 주부와 중간부 그리고 다시 주부로 진행되는 3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부는 b단조인데 향토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며 다시 주부를 지나면 코다로 끝맺게 됩니다. 여기서는 극히 침울한 기분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것입니다.
독특한 4분의 5박자는 러시아 민요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민요에 있는 이 박자는 전반이 2박자, 후반이 3박자니까 어딘가 불안한 기분을 빚어내는데 이 악장이 표면적으로는 우미하면서도 그 밑바닥에 어두운 것이 깔려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b단조 중간부의 가슴을 조이는듯한 애가는 절묘하다 할 수 있습니다.
<3악장> Allegro molto vivace
빠르면서 매우 생기 있게
G장조, 4분의 4박자,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합친 두도막 형식
현악기가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데 명랑하고 쾌활하기 보다는 화려하고 침통한 맛이 나는, 절망에 대한 투쟁의 진군을 연상케 하는 행진곡에 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이코프스키가 이탈리아에 여행했을 때 귀담아 들은 타란텔라의 춤곡을 본받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그의 ‘이탈리아 기상곡’에서는 타란텔라 무곡의 영향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시금 4박자 리듬의 발랄한 행진곡의 주제로 들어간 후 다시 스케르초 풍의 주제가 나타나고 행진곡의 주제와 그 발전으로 생각되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우매함을 조소하며 운명 앞에 몸부림치는 심정을 드높이 울리는 심벌즈의 소리로 일축하고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가속감이 점점 더해지면서 러시아 군인들의 끊이지 않는 행진을 연상케 합니다.
<4악장> Finale, Adagio lamentoso
종곡, 애도하듯이 느리게
b단조, 4분의 3박자, 세도막 형식.
3악장의 무한질주하는 행진감에서 갑작스런 멈춤으로 인한 비장한 상실감이 마치 관성의 법칙의 영향처럼 정신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슬픈 탄식과 절망을 나타낸 그러나 아담한 악장으로서 흔히 교향곡의 4악장은 쾌활하게 끝나게 되지만 여기서는 아주 무거운 기분으로 비창한 감을 느끼게 합니다.
첫머리에 나타나는 단념할래야 단념할 수 없는 한없는 탄식의 제1주제가 현악기로 연주되고 이것이 고조된 후 느린 중간부로 이어지며 얼마 후 제2주제가 나타납니다.
코다가 지나면 제2주제가 무한한 적막감이 감도는 마치 비창의 제목과 잘 부합될만한 여운을 남기면서 조용히 끝납니다.
이 악장은 죽음에 직면한 자의 체념과 같은 것이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어두움은 가슴을 도려내는듯한데, 중간부는 마치 운명하는 사람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방황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하는듯한 느낌으로, 얼마간 밝아지다가 다시 암담한 표정으로 돌아가서 등잔불이 꺼지듯이 약한 음으로 끝납니다.
이전 어느 교향곡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4악장에서 느린 악장으로 마무리하면서 마치 눈물의 콜레라에 걸려 혼수 상태에 빠진듯한 슬픔과, 남자의 속으로 우는, 진한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진한 눈물로 얼룩진, 몸서리치는 4악장을 들으면서 2가지의 시 구절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말러의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6악장의 중국의 왕유의 시에서 발췌한 가사에 의한 “이별”의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이 세상의 운명은 나에게 미소를 짓지 않았네!…영원히, 영원히…”
또 하나는,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쇼팽의 연인 조르쥬 상드와의 연애설로도 유명)의 <비애>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도 떠올리게 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
뮈세가 말하기를“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다" 라고 했듯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이러한 감정적 감수성이 흘러넘치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소장하고 있거나 들어본 음반들>
푸르트뱅글러-베를린필(DG)-1951년 이집트 카이로 실황 / 푸르트뱅글러-베를린필(EMI/낙소스)-1938년
 1951 LP  1951 CD  1938 CD
저와 차이코프스키 비창과의 첫만남은 LP시절 푸르트뱅글러의 분홍색 쟈켓인 1951년 이집트 카이로 실황 녹음이었습니다. 이른바 안동림 교수의 “이한장의 명반” 서문에 나오는 그 기침 소리 나오는 실황반이죠. 20세기 전반의 전설인 푸르트뱅글러와도 첫 만남이었습니다. 모노 녹음이었지만 이 곡의 분위기, 감정에 몰입하게 해주었던 잊지 못할 음반이었습니다.
푸르트뱅글러의 연주가 비창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깊이있게 다룬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지금 낱장 CD로 구하기는 어렵지만 고클에서 최근 저도 다운로드하여 옛 추억을 더듬으며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1938년반을 저는 최근에야 들을 수 있었는데 저로서는 녹음이 그나마 더 낫고 친숙한 1951년 DG반이 더 좋았지만 이 음반도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음반인지 공감은 갑니다. 푸르트뱅글러만이 묘사할 수 있는 감정의 몰입과 박력을 갖춘 연주이군요. 이것도 고클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고요.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필(DG)-1960년
  
동일 음원
푸르트뱅글러 그리고 카라얀 등에 익숙하면서 비창이란 제목이 주는 정서에 익숙해 있던 저에게 어느날 라디오를 통해 므라빈스키라는 지휘자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와의 첫 만남이 된 비창은 실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이 곡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악장의 그 노도와 같이 흘러 넘치는 사운드에 마치 음의 홍수에 떠밀려가듯 몸서리치는 연주이더군요. 이 때까지 익숙해 있던 자유진영의 연주자들이 들려줬던 감상성을 배제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연주란 이런 것인가 하고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므라빈스키의 레닌그라드필의 금관군에는 완전히 압도되게 만들더군요.
들어보진 못했지만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다음의 음반들도 호기심이 가는 연주입니다.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필- 1956년(DG)모노 / 1982년 (엘라투스) / 1984년 (에라토)
  
카라얀-필하모니아(EMI)-1955년 모노 / 카라얀-베를린필(EMI)-1971년
/ 카라얀-베를린필(DG)-1976년 / 카라얀-빈필(DG)-1984년
  
 
아래 2가지-1984년 빈필반-같은 음원
므라빈스키 외에 카라얀만큼 비창 교향곡에 집착을 보인 지휘자도 드물 것입니다.
정규 녹음만도 1939년의 베를린필, 1948년 빈필, 1955년 필하모니아, 1964년 베를린필, 1971년 베를린필, 1976년 베를린필, 1984년 빈필 이렇게 7종에다, 영상물 2편, 그외 비정규 녹음으로 1954년 NHK교향악단, 1981년 베를린필, 1984년 8월 27일 빈필과의 잘츠부르크 음악제 실황, 1984년 8월 31일 빈필과의 루체른 음악제 실황, 1988년 베를린필과의 도쿄 실황 등의 5가지가 더해져 총 14가지나 되는 셈입니다. 실로 웬만한 본토 출신 지휘자조차 넘보기 힘든 집념의 기록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들어본 것 중에
1955년 연주는 젊은 시절의 연주라 그런지 젊음의 패기와 긴장감이 느껴지는 연주로 녹음도 모노이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고 박력 있는 연주입니다.
1971년 연주는 1976년 DG반에 비해 좀 더 날렵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유려한 맛이 있습니다.
1976년 DG연주는 한마디로 맹렬함 그자체이듯 선이 굵고 심포닉하며 저돌적인 베를린필 사운드를 만끽하게 합니다.
1984년 빈필반은 카라얀의 7번째인 마지막 정규녹음인데(1988년 베를린필과의 도쿄실황도 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추구하던 과도한 감정 몰입에서 벗어나 빈필의 유연한 표현력을 이용해 정감 넘치는 표현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1939년 베를린필을 지휘한 그의 첫 녹음(그라모포노 2000), 1948년에 모노로 빈필을 지휘한 녹음(히스토리), 1964년 베를린필을 지휘한 DG반 등도 흥미있는 녹음들입니다.
  
번스타인-뉴욕필(DG)-1989년
 
같은 음원
노년의 번스타인은 그동안의 관록에 힘입어서인지 곡을 지휘하기 앞서 그 곡에 심취되기 위해 말술 아니면 러시아산 보드카라도 잔뜩 마신 후 대취하여 지휘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연주와 뚜렷이 구별되는 점으로, 마지막 4악장이 17분11초로 다른 연주에 비해 7분정도 더 길게, 엄청나게 느린 연주로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숨넘어가게 무서운 연주도 드물 것입니다. 마치 다음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차이코프스키가 된 듯 이 세상과의 이별을 대지의 노래 6악장 “이별” 처럼 길게, 길게 연주하고 싶었나 봅니다.
참고로 므라빈스키 1960년반과 번스타인과의 연주시간 비교입니다.
1악장: 17’38 (므라빈스키) - 22’44 (번스타인)
2악장: 8’04 (므라빈스키) - 8’36 (번스타인)
3악장: 8’19 (므라빈스키) - 8’59 (번스타인)
4악장: 9’45 (므라빈스키) - 17’11 (번스타인)
므라빈스키가 전체시간이 43분46초 인데 반해 번스타인은 58분30초로서 전체적으로 14분44초 더 길게 연주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제스트밴스키-런던(브릴리언트)-1987년
러시아 출신으로 런던 교향악단과 연주하고 있는데, 차가운 지성으로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게 연주한다고 특징을 지우면서 상당히 끌리는 연주입니다.
1악장의 노도처럼 몰아치는 관악의 포효에서도 야성미를 절제하면서도 관악기군을 풍부히 울리면서
1,2악장에서 현에서 나타나는 유려한 선율미는 한층 더 세련되어 보이는 연주입니다.
3악장-마치 흰눈 날리는 얼음 벌판 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러시아 군인들의 행진을 보는 듯 밀려오는 느낌 입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발 날리는 허허벌판 위를 가혹하게 행진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실제 촬영지는 핀란드 였다고 하지만)
4악장의 비창미는 마치 눈발 속으로 아련히 사라져가는 고별의 한탄과도 같이 들립니다.
오먼디-필라델피아(소니)-1960년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두텁고도 풍윤한 현과 관으로, 신경 예민한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비만한 사람도 우울증이 많은데 그러한 사람의 비창미라고나 할까? 건강미 있는 비창이며 거부감이 없는 음악성으로 즐길만한 연주입니다.
다음 두가지는 들어보진 못했지만 특히 1981년 델로스반이 어떤 연주인지 기대가 되네요.
오먼디-필라델피아(델로스)-1981년/ RCA 1968년
 
플레트네프-러시아 내셔널(버진)-1991년
 
동일 음원
근래 5번의 게르기에프처럼 6번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연주로, 플레트네프가 새로 조직한 러시아와 유럽의 실력 있는 연주자들로 구성하여 민영 오케스트라인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참신하고도 도전적인 연주입니다. 현대적인 세련된 울림과 박력이 군데군데 돋보이는 수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첼리비다케-뮌헨필(EMI)-1992년
5번에선 이 사람에 대해 좀 악담을 했는데, 6번 이 연주는 제법 괜찮네요. 1악장부터 좀 느릿하게 잡으면서도 충실한 심포닉한 울림과 감정의 기복이 대하처럼 흘러가면서 관의 울림도 감탄할만하며 그의 다른 연주 중에서도 이 연주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동안 이 사람에 대한 반감을 꽤 누그러뜨려 주는 훌륭한 연주입니다.
<앞으로 들어보고 싶은 음반들>
멩켈베르그-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필립스)-1932년 모노
20세기 전반 푸르트뱅글러와 함께 주관적인 감정에 몰입하는 스타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조련사였는데 모노이지만 그의 연주는 19세기적 낭만과 달콤하고 환상적 분위기, 섬세하게 흔들리는 루바토로 정평이 나 있는 지휘자이라 푸르트뱅글러와 비교하여 모노이지만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음반이네요.
프리차이-베를린방송(DG)-1959년 모노
 LP
프리차이가 녹음한 후 본인 마음에 안들어 발매를 보류하다 사후 발매된 음반으로 들어보신 많은 분들이 호감을 나타낸 소문난 음반 중 하나입니다. 선이 좀 가는듯하면서도 순수한 맛이 나는 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줄리니-LA필(DG)
 LP
줄리니 특유의 다이나믹한 맛과 노래하는 연주를 기대하게 하는데 이것도 많은 분들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해하는 연주입니다.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인데…
스베틀라노프-소련국립(캐년)-1990년
4,5번 1990년대 시리즈에서 보여준 실력이라면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어보이며 포효하는 러시아적 울림을 6번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나 사뭇 기대가 됩니다.
콘드라신-모스크바필(알투스)-1967년
러시아의 또 한명의 귀재 콘드라신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를 창백한 감상으로 해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건강하고 정력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대가 됩니다.
아바도-시카고(소니)-1986년/ 1974년 빈필(DG)
 
1970년대의 빈필 음반도 무척 갖고 싶은 연주인데 특히 결합곡인 보스턴 교향악단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는 시카고 교향악단과 1990년대에는 베를린필과 비창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1986년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연주를 좋게 평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흐름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순수하고도 투명한 사운드로 풍부한 노래 속에 신파조에서 벗어난 연주로 평들 합니다.
얀손스-오슬로필(샨도스)-1984년
므라빈스키 스쿨의 제자로 얀손스의 차이코프스키는 다른 연주와 차별적으로 차갑고 정제된 연주가 특징인데 최근 들어본 그의 5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지나치게 야성적이지도, 신파조도 아닌 냉철하고 정갈한 사운드를 기대하게 합니다.
시노폴리-필하모니아(DG)-1989년
시노폴리의 5번을 좋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던데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다이나믹하면서도 유려한 노래의 흐름, 음의 구축력 등을 다른 그의 연주를 통해서도 짐작하게 합니다. 시노폴리의 브루크너 7번 2악장의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곡했다는 그 곡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에서의 비창미를 차이코프스키에서는 어떻게 재현해 줄까 기대가 됩니다.
그동안 차이코프스키 시리즈를 보면서 흥미를 느껴 한번 저도 써본다는 것이 4번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프로그램 설명도 있고 저도 각 악장 마다 절절히 몰입하게 하는 곡이라 생각나는대로 글 쓰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5,6번은 너무나 잘 아시는 곡이라 저도 써봐야 앵무새 흉내처럼 여러 해설들을 짜집기 하는 수준 밖에 안되어 망설였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해보고 마지막 단추를 채우자는 심정으로 저 개인적 감상과 함께 장황하게 늘어 놓고 말았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그렇고, 조희영님의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4,5,6번도 기대했었는데 이전 글에서 다 표현하셨다고 여기셨는지, 아니면 제가 불쑥 끼어들어 쓰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변변찮은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경훈 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