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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시험기간이라 제가 정신이 없어서 이제서야 올리네요. -_-a;;

오빠 미안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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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제가 처음 군생활을 시작했던 102보충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춘천의 2군단 사령부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2년을 복무하며 보충대에서, 훈련소에서 그러하였듯이 또 다시 백지상태로부터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긴장감과 기대, 안도와 불안이 어지러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 입대 전에 훈련병 기간 6주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정작 군생활의 진짜 시작인 이등병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음을 느낍니다.

신병 조의명의 '얼어있는'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오렌지색 활동복(으으..환타페트병 생각난다;;;)을 입은 어색한 제 모습에 저 자신조차도 가끔 웃음짓곤 한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보낸 6주 동안 저는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막막하게만 보였던 훈련들을 이겨내며 불가능해보이던 것들이 어느새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오히려 힘겨워하는 주위의 동료들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음에 기뻤습니다. 남성적인 강함과는 다른, 인간적인 강함이 무엇인지를, 참고 이겨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잃은 것은 적고 얻은것은 많은 셈이군요. 시련에 사람이 어른이 된다면, 이제 저는 본견적으로 어른이 되는 훈련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대한민국 최말단 신병으로써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나가며 낯선 일들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분명 모두가 제게 호의적이고 친절하지만은 않을 것이며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 발밑이 더욱 좁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하기 나름이란 것이겠지요. 이곳의 업무는 비교적 제 적성에 맞는 일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선임병들도 대부분 좋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명분론이었던가요? 신병은 신병답게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나도 모르게 이곳 생활에도 적응하게 되겠지요.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낯설음에 익숙해진다는 말. 모순일까요? 안 그래도 '외골격 인간'이었던 저는 요즘 들어 더욱 스스로의 형태를 고착화시키게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 변하지 않을겁니다. 다만 제 내부의 부조화에 대한 정리를 거치며(어쩌면 변화 가능성의 소멸일지도^^)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하게 되겠지요. 예전의 저를 사랑하시던 분들은 부디 기뻐하십시오. 저는 생각보다 50000배 정도 더 고집센 인간이었고, 군생활은 조의명을 더욱 조의명화시키게 될 겁니다. 믿어봐요. : )

낯선 것들에 익숙해질수록 익숙했던 것들을 더 그리워하게 됩니다. 가족들, 너저분(!)한 내 방, 혜연이, 자하연 물구덩이, 녹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수 많은 이들..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느끼는 저는 여러분 모두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중이실 몇몇 분들까지도^^;) 다음번에 다시 만나는 날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그저 조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서로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여러분들꼐 편지나 전화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간고사 준비는 잘들 하고 계신가요? 돌아가는 그날까지 서울대 폐교 안 되게 학교들 열심히 다니고 계십쇼. 곧 부활 재림합니다. -_-+ 곧..아마도, 어쩌면.^^

봄입니다. 비도 내리고...건강하세요^^/

2003년 4월 20일
호반과 안개의 도시에서 adore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