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도망가려했다. 따가워지는 4월의 태양이 두려워서도 아니었고, 만으로 3년이 넘게 밟아 온 그 보도블럭들의 색깔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무엇인가 잃어버렸을 뿐이었다. 2년 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작년 같은 태양 아래에서 잃어버렸었던 것은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꼭 도망가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 비겁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그는 도망가려 하고 있었다.
그에게 도망간다는 것은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4월의 날카로운 태양 아래에서도, 10월의 텅 비어버린 듯한 하늘 가운데에서도 같은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부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처음 시작만은 그랬다.
당신은 이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듣고 싶지 않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 허튼 소리로 시작한 감이 있다. 벌써 지루해졌을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속된 말로 하자면 그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는 저금통에 떨어지는 동전 소리를 들으며 그녀에게 예쁜 옷을 한 벌 사줄 수 있다고 혼자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 말씀이다. 잔돈이 많을 때에도 지폐로 계산하고는 주머니에 쌓이는 동전 소리에 행복을 느끼고는 했다 이 말씀이다. 이쯤에서 당신은 다시 조금 짜증내거나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난데없이 ‘그녀’라니 이해할만하다.
그러니까 그녀에 대해서 설명을 해두지 않으면 당신은 여기서 이 글을 읽는 것을 그만둘 듯 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길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데 왜냐면 그가 좋아하는 ‘그녀’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감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다시 짐작해보자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그는 당신을 잘 모른다. 그저 당신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 종종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는 당신과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당신의 인상뿐이다. 조금씩 다시 당신을 짜증나게 만드는 문장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것이 내 능력의 한계인데.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이 글을 계속 읽어나감으로써,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그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절대 당신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소 불안한 것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다소 번잡한 문장들이 그에 대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호감을 작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도 감히 또 말해보자면 그것은 당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조금은 깔끔한 문장으로 중요한 말만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도록 하겠다.
아, 내가 하려던 얘기는 당신도 알다시피 그가 말하는 당신의 모습이다. 물론 그는 당신이 예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용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말수가 적지만은 않을 듯하다고 말한다. 꽤 침착한 성격 같지만 확신은 못하겠다고 한다. 이상이 그가 말하는 당신에 대한 전부다. 조금 실망스럽겠지만 그를 이해해줘야 한다. 그는 불행히도 당신과 이야기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이제 당신도 그에 대해 조금은 궁금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호기심과 호감은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그에게 호감을 가질만한 말들을 더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하지만 어디가서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그런 얼굴은 아니다. 그것만은 내가 보증한다. 누군지도 모를 나 따위가 보증하다고 당신이 이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어쨌든 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보자면 키는 보통이고 마르지도 찌지도 않았다. 첫인상은 차가운 편이지만 그의 행복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고, 누군가를 챙기는 데에 있다. 나름 따뜻한 녀석이란 말이다. 그의 말로는 장래희망이 공처가라고 하는데 100%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잘 챙겨줄 듯은 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많이 손해볼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를 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그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예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가 쓰고 싶은 글은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가슴 가득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이라 한다. 아마 그는 지금도 당신을 위해서 예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장점들을 더 설명하고 싶지만 잘 생각해보니 여태 말한 것 이외의 장점은 그다지 없는듯도 하다. 억지로 생각을 짜내 하나 더 말해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장점은 100% 솔직하다는 것인데, 그 솔직함 때문에 일이 잘 되지 않을지라도 그는 숨기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가 너무 솔직해서 당신의 마음에 안드는 말들을 할지라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약간 다른 범주지만 말해두자면 그는 어느날 갑자기 당신에게 ‘살 쪘네?’라는 말을 툭 던져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당신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갖고 말을 걸 기회라도 줬을 때의 이야기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묶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의 생각과 느낌은 너무도 여러 곳으로 뻗어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하나로 묶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를 그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해보고자 한다. 당신은 그에 대한 나의 횡설수설하는 말들을 한참동안 들었지만 실상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아주 약간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이 무례한-솔직히 인정하건데-글에 다소 화가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누차 강조했지만 나는 당신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과 호감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은 오히려 제대로 본적도 없는 ‘그’란 인물에 대해 호감은커녕 짜증만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내 탓이니 부디 그 생각만은 거두어 주시라.
불안한 마음 때문에 그에게 당신이 호감을 가질만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그는 이것 저것 관심이 많다. 따라서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이야기가 통할 것이다. 물론 그가 관심이 없어 모르는 분야도 수도 없이 많지만, 만약 당신이 그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하루종일 그 주제에 대해 알아볼 것이고, 바로 다음 날 같은 주제로 대화를 했을 때 당신은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생각한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와 친해진다면 아마 그는 두세달 동안은 삶이든 사회문제든 잊고 지낼테지만 말이다.
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겨워졌다. 원래는 이것저것 더 말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의 설명방식은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듯 하다. 어쩌면 당신은 지겨워져서 여기까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이게 그의 팔자니까.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해두자면 이런 짜증나는 글을 당신이 읽게 만든 그의 엠에센 주소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 아래에 있다. 자, 그럼 이만 당신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그에게 행운을 ! 그리고 당신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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