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몸이 가벼웠다.
이것이 죽음인가.
정말로?
순간 -파앗-
나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아니 그런 표현이 적당할까.
당신들, 그러니까 흔히 인간들이
살아있다 말하는 상태에서 벗어났다.
끝?
그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생명체를 발견한 나는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생명체...그렇다, 나는 죽은게 아니었다.
그 것은 내가 알던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존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죽은게 아닌가요?
분명히 죽은 것 같은데..."
"새로 오셨나보군.
전의 세계에서는 이곳으로 오는 것을
죽었다고 표현하곤 했었지요.
그 갑갑한 옷을 드디어 벗어버리셨군."
그 곳에서 입고 있던 껍데기를
육체라고 했었지요.
이 곳은 그 껍데기를 벗어버린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이제부터는 느끼는 방식도 소통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아시게 될거요."
"그렇다면 이 곳은 어디죠?"
"다음의 세계죠.
죽으면(아랫 세계의 언어로 하자면)
육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버릴 자격을 얻죠.
그리고 이 곳에 와서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다음의 세계는 또 뭔가를 버리게 되겠지요.
무엇을 버리게 될 지는 나도 모릅니다."
"계속 하나씩 버리게 되는 건가요?"
"아랫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은
그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이 다음의 세계가 존재하기는 하는건지
확신하는건 아니에요.
다만 그럴거라 생각할 뿐이죠.
만약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면
마지막엔 뭔가 알맹이만 남아있겠죠."
~이상이 내가 두번째 세계에서 처음 만난
생명체와 나누었던 대화이다.
과거형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내가 이미 그 세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몇번이고 다른 세계를 살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 끝은 없다 !
한 번은 뭔가를 잃고, 또 한 번은 뭔가를
하나 더 얹은 상태로(다행히 육체는 아니었다 !)
세계가 바뀔 때마다 존재방식은 달라졌다.
기억은 항상 유지되었지만
첫번째 세계에서 뇌가 그 보조수단이었던 것과는
달리 각각의 세계에서 그 나름의 보조수단이 있었다.
더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첫번째 세계에 사는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들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체들은 그저 호기심에서
자진하여 다음세계로 마구 이동하고는 한다.
그들이 어디까지 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
현재 나는 37번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수만번째에 사는 생명체도 존재할 것 같다.
가끔 그룹을 만들어 초고속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하나 하나의 세계를 건너 뛴다는 것이
아직도 두렵다.
38번째 세계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 현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4-28 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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