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설록 형준
그 사건은 며칠 전에 벌어졌다. 나는 여느때와 같이 기숙사 삼거리에서 내린 후 5동 3층으로 올라갔다. 과도의 문은 잠겨져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지나친 후 과사의 문을 노크한 뒤 들어갔다. 요즘은 특히 담배를 안 갖고 다니므로 학교에 오자마자 나의 동기 김형준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곤 했다. 그 날도 담배를 얻어 피우기 위해 과사로 들어갔고, 마침 김형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형준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담배 빌리러 왔나?”하고 물었다.
“응. 어떻게 알았지?”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네가 남자를 찾아오는 경우는 담배를 빌리러 오거나 돈을 꾸러 오는 경우 두가지 뿐이지. 하지만 돈이 필요했다면 나한테 오지 않고 남용훈에게 갔었을거야. 돈은 남용훈이 더 많으니까.” 그가 대답했다.
“아, 대단한데.” 나는 내심 그의 통찰력에 감탄해버린 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주지 않았다. 나는 하릴 없이 김형준이 담배를 들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김형준은 괜시리 바쁜 척 하면서 연신 종이컵의 녹차를 들이마시고 “음, 역시 녹차는 설록차 티백이야”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더러워서 안 피운다고 말하려던 찰나 옆 방, 그러니까 과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김형준과 나는 서둘러 과도로 달려갔다. 과도의 문은 잠겨져 있었고 여전히 불도 꺼져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불을 켰더니 과도 가장 구석 자리 아래 쪽에 남용훈이 기절한 채로 누워 있었다. 우리는 쓰러져 있는 남용훈에게로 다가가 그를 살폈다. 그는 의자 채로 뒤로 넘어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종이컵과 흥건한 물기, 그리고 침흘린 자국과 굴러다니는 독서대가 보였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후 나는 남용훈의 코가 깨진 것을 알아챘다.
“코가 깨져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자 김형준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곳은 밀실이야. 과도의 문은 잠겨져 있었어.”
“밀실? 그렇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용훈을 공격한 거란 말이야?”
“그래,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졌다는 건 명백한 공격의 증거지. 작년에 무수한 소개팅과 미팅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재수없는 남용훈이라지만 뒤로 넘어진다고 코가 깨질 수는 없어. 이것은 명백히 고의적인 공격이야 !” 나의 질문에 김형준은 단호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이 안에서 잠긴 것이 아니라 밖에서 잠겨있었는걸.” 내가 토를 달았다.
“물론 그렇지. 그러나 남용훈이 비명을 지르자마자 바로 옆방인 과도에서 우리가 달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초야. 그 사이에 구석진 곳에 있던 남용훈을 공격하고 과도의 자물쇠를 잠그고 도망가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지. 아까 네가 과도를 지나칠 때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지?” 김형준은 고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응, 분명히 잠겨져 있었어. 그렇다명 정말 밀실사건인건가? 창문으로 도망갔을 가능성은?”
“화단에 아무런 발자국도 없어. 이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기란 쉽지 않고, 뛰어내렸다 해도 발자국이 남았을 수 밖에 없지. 난간을 통해서 계단으로 뛰어내렸을 가능성도 생각해봤지만 그 방법도 시간상 불가능해.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어. 녹차 좀 갖다줄래?” 김형준의 부탁으로 나는 서둘러 종이컵에 설녹차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왔다.
“역시 녹차는 설녹차 티백이지”라 말한 후 김형준은 홀짝홀짝 녹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남용훈이 깨어난 뒤 사실을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시끄러워, 생각 중이란 말이야. 너도 설녹차나 좀 마시는게 어때?” 김형준은 화를 버럭낸 후 다시 설녹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10여초가 흐른 뒤 그는 다시 말을 꺼냈다.
이렇게 구석까지 와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 면식범의 소행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어. 그리고 뒤로 넘어뜨려놓고 코가 깨지게 만드는 이 잔인하고 몰상식한 수법. 김현우, 범인은 역시 너다 !“
김형준의 난데없는 외침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김형준이 말을 이었다.
“너는 돈을 빌리러 남용훈에게 갔지. 그리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 그렇지만 남용훈은 너한테 돈을 빌려줄 바에는 그 돈으로 소개팅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겠지. 그래서 화가난 너는 남용훈을 넘어뜨린 후 잔인하게도 코를 깨뜨려 버렸어.”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비명 소리가 들렸던거지? 그리고 과도가 밀실이었다고 말한건 형 아니었어?” 나도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남용훈이 이렇게 된 건 방금 전이 아니야. 넌 학교에 오자마자 과도에 들러서 남용훈에게 갔던 거고 사건은 이미 그 때 벌어진 거지. 시간이 좀 지나자 너는 나에게 담배를 빌리러 온 척을 하며 마치 과사로 바로 왔다는 듯이 행동한 거지. 남용훈을 의자째로 넘어뜨리고 독서대로 남용훈의 코를 깨뜨렸지. 이 흥건한 물은 네가 급하게 독서대를 들면서 실수로 넘어뜨린 종이컵에 있던 것일테고. 그렇게 범행을 저지른 후 바로 밖으로 나와서 자물쇠를 잠궜으니 이 방이 밀실일 수 밖에.”
“그렇다면 비명 소리는 어떻게 된거지?”
“너는 항상 과반방에서 스피커를 가져와서 MP3에 연결해서 듣곤 하지. 그리고 네 MP3에는 녹음기능도 있어. 봐, 저기 스피커가 있잖아. 너는 나와 함께 들어와 내가 안보는 사이 MP3를 스피커에서 분리 해 다시 주머니 속에 넣은거지. 이래도 발뺌할거야?”
“말도 안돼 ! 난 남용훈을 공격하지 않았어 !!” 내가 절규하고 있던 그 찰나 남용훈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김형준을 보더니 “이 시방새야!”를 외치며 김형준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한 얼굴로 그 둘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볼 수 밖에 없었다.
epilogue
나는 머리가 멍하다는 남용훈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 가면서 남용훈은 사건의 전모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김형준은 과도에서 남용훈과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김형준은 언제나처럼 뜨거운 설녹차를 마시고 있었고 과도에서 나가면서 그것을 남용훈 책상 바로 앞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가려던 김형준에게 남용훈은 잠깐 잘테니 불을 꺼달라고 했고 김형준은 불을 끄다가 아무 생각없이 문을 잠그고 나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넘어지고 코가 깨진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내가 말하자 남용훈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자던 남용훈은 눈을 반쯤 뜨고 일어났다. 그러나 불이 꺼진 과도는 너무 어두워서 책상 위의 라이터를 더듬더듬 찾다가 그만 김형준이 놓아두고 간 뜨거운 설록차를 넘어뜨린 것이다. 손이 데이자 당황한 그는 몸을 뒤로 빼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갔던 것이고, 그 와중에 팔에 걸린 독서대가 날아가 그의 코를 깨뜨린 것이다. 남용훈은 긴 설명을 마친 후 허허 웃으며 김형준에게 욕문자를 보냈다.
daeho82 ::: 설마 실화냐.-_-?
junasy ::: Tres Bien, 최근의 너의 작품 중 최고의 수작!
junasy ::: 대신 첫머리에 '픽션'이라고 달아야지, 바보 삼형제가 아니라 또라이 3형제가 되어버리잖아
h_ ::: 아, 정말 웃겨서 쓰러진다. 근데 왜 설녹차라고 썼다가 설록차라고 썼다가 그랬냐. 암튼 쵝오-_-b 감동적이오. 평소에도 이러고 노는 거니;
petite ::: 정말 쵝오. ㅠ_ㅠ
박군 ::: 음..이 이야기 뭔가..-.-;;
박군 ::: 정말 또-_-라이 삼형제같이 되어버렸네;;;
Giverny ::: 난 이것을 쓰기 위해 학교에서 집으로 가버렸소
Giverny ::: 그리고 설마 실화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_-
Giverny ::: h_//설녹차는 본인의 불찰;;
빨간군바리 ::: 조만간 PX 녹차 한 상자 상신하겠사옵니다 (--) (__)
Giverny ::: 앗 설록 형준이 셜록 홈즈 패러디인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 ㅠ_ㅠ
코깨진 넘 ::: 주글래? 내가 왜 코가 깨져? 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말이야..ㅋㅋㅋ
Giverny ::: 크하하 코깨진 넘이라니~ 응 올해는 좋은 일 가득할거야 형은
daeho82 ::: 미안하다.. 실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ㅡ.ㅡ;;;
petite ::: 실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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