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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담배

세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했는데도 고작 50km도 달리지 못했다.
아니, 서울 시내에서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지도 모른다.
그래도 15분 후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고 안도하며
길게만 느껴지는 빨간 불빛 아래에서 담배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여자와 키스하는 느낌에 대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둘은 미로 같은 건물 안을 걷는다.
복도를 밝히는 불빛은 드문드문 놓여있고, 우리를 스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을까. 아니면 네 어깨에 팔을 두른 채였을까.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너는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던가,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는 잠시 길을 헤매다가 기어코 찾아냈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저곳이라고 손가락으로 유리문을 가리킨다.
우리는 유리문 너머 널따란 공간으로 걸음을 옮긴다.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난간 아래에 맥주를 꺼내놓고
비닐봉투는 네가 앉을 수 있도록 바닥에 반듯하게 펴놓는다.
난간 너머로 무심한 건물들이 쏟아내는 빠알간 빛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 우리는 그 불빛을 등지고 앉아 맥주를 한 캔씩 따서 마신다.
너는 내게 담배를 피워도 좋다고 말한다.
물론 나는 네 앞에서 단 한번도 담배를 꺼내본 적이 없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갑자기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내가 담배 태우는 모습이 보고싶다고 말한다.
나는 마지못한 척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문다.
너는 라이터를 뺏어들더니 불을 붙여주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한 모금을 빨아들인다.
서울의 불빛. 담배 한 모금.
서늘한 바람. 다시 한 모금.
술 때문에 달큰한 표정으로
위태로운 난간 사이로 지나가 건물 아래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하얀 연기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던 너는
내게서 조용히 담배를 빼앗아 한모금을 차분히 빨아들인다.
예전에 가끔. 아주 가끔 그랬었어-

그날 우리는 입을 맞췄었을까.
담배 냄새 가득한 내가 싫다기보다 그저 한모금 머금었던 것이 더 부끄러워
나를 밀어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와 키스하는 것이 여전히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때,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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