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빌려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
그렇지만 사실 읽기 버거웠다.
한 번도 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사실 전화를 하기 위하여, 받기 위하여 두 번 놓기는 했지만...)
이 책이 내게 줄 거라 예상했던, 그리고 끝내 주었던
그 감정은 오늘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버거운 것이었다.
아주 친한 사람 전화가 아니면 받고 싶어지지 않아지는,
사실은 아주 친한 사람들의 전화조차 종종 받아버리지 않는,
그리고 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는지, 왜 나는 내가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렇게 품고 가는지만으로도 하루가 숨가쁜,
짧은 만화 한 편에도 눈물을 참아내야 하곤 하는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아하는 광경,
오래 전에 익숙해졌다 믿었는데 이렇게 다시 약해진 내게
결코 쉽지 않았던 그 광경을 다시 본 오늘의 내게 슬픔이란
감정은 너무나 벅차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문자를 보내고
한참을 고민하다 어렵게 단축번호 2번을 누르는
(그래, 2번이다...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더이상 원치 않았던 것이다.
언제나 가슴뭉클하게 혹은 시리게 하곤 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이번에는 마치 슬퍼하라고 작정을 하고 쓰인 것만 같다.
그는 존 레논의 'Imagine'을 듣다가 이 글을 쓰고자 결심했을까.
왠지 그 점이 궁금해진다. 언제부턴가 이 작가는 이 부분을, 이 책을
어떤 느낌을 가진 채 썼을까를 궁금해하는 습관이 생겼다.
번역자의 말대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에도 남자의 시선으로
냉담하게 서술한다. 여전히 호흡은 빠르고(그래서 종종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곤 한다) 여전히 불필요한 문장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살인자도, 살인자의 동생도, 피해자도, 피해자의 가족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화자의 시선에서는 그저 타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 냉담한 시선을 좇다보면 오히려 모두가 피해자라는 느낌이
든다. 글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인물도 비난할 수가 없다.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 내몰려 살인을 한 인물과
그 때문에 함께 그 짐을 짊어지는 동생과 그 가족은
분명 미워하기 보다는 보듬고 돌아봐야할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차갑게, 혹은 벽을 치고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 또한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가 초등학생이라면
그런 그들에 화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우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다.
그리고 살인자의 동생이자 주인공인 나오키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실질적으로 우리에게는
'왜'라고 질문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나오키의 회사 사장이
나오키에게 말하는 것도 그 점이다. 나오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질문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왜'는 스스로를 위한
변명이 되고 타자를 망각하게 만든다.
나오키의 부인 말대로 '죄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면
원인 또한 이미 지나간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이유야 어쨌든 간에 결국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오키는 형과 절연을 결심한다.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그 어떤 선택에도 사실은 후회나 슬픔이 남는다는 것도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언제나처럼 반전을 준비한다.
어떤 면에서는 형식적이고 내용 측면의 반전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메시지'의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절연하기로 결정한 나오키의 결심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숙명과 그 무게를 읽어내게 되고 개운하지는 않은
기분으로 그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오키의 선택이
가지는 무게와 의미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몇 페이지는 우리의 그런 결론,
사실은 고약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고의로 이끌었음이 분명한 결론을
뒤집는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지워진 숙명은 그저 안고 나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살인한 자신의 형을) 내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끝까지 끌어 안으려 해야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우리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2.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3.우리는 서로를 헤아려야 한다.
운명의 무게를 짊어진 자는 자신을 비난하는 모든 이를,
비난하던 모든 이들은 그 무게를 짊어진 자를.
4. 그리고 그 헤아림 또한 서로에게 기대하지는 말 것.
왜냐면 그 헤아림 또한 쉽지 않기에.
5. 그리고 그리고 힘껏 살아갈 것.
이렇게 서둘러 읽어버린 건, 뭔가 하나라도 빨리 공유하고 싶기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