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이탈로 칼비노의 두번째 작품.
언제나 그렇듯이 작가의 대표작을 읽고 반해버려서
읽게되는 작품은 B급이기 마련이다. 이 작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대치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
코스모코미케란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우르꽝스러운 우주>를
의미한다. 그러나 번역판 제목은 <우주 만화> 정도로 되어 있다.
이래저래 출판사 편집자들의 심정을 남들보다 잘 이해하게 된
나로서는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책은
내어주는 것 자체로 충분히 고마워 할 수밖에 없다.
이탈로 칼비노는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작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최고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이니만큼 일단
신중한 태도를 취해보기로 한다.
어쨌거나 이 작가는 환상문학 작가이다. 마르케스 등의 남미 작가들 같은
환상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더욱 특별하다. 왜냐하면 정말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다행이라 느꼈던 점은 장르 문학 작가 중에
인문학에 깊은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흔한데 반해 순수문학 작가 중
(물론 나는 이따위 표현을 싫어하지만 일반의 표현에 따르기로 한다)
문학이나 음악 외의 분야에 깊은 소양을 갖춘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이 작품에서 천체물리학, 천문학, 생물학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1부는 가장 읽기 쉬운 부분이다. 주인공인 크프우프크(qfwfq)는
생물의 진화의 한 가운데 있다. 그는 태초의 존재이자 현존하는 존재이고
마지막 공룡이 되기도 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달라지지만
그 이름은 언제나 크프우프크이다. 이름을 회문(거꾸로 읽어도 처음과
발음이 같은 말)으로 택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발음할 수 없는 말이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크프우프크는 이 작품 전체에서 항상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특수한 존재이면서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주가 수백억년
동안 팽창하는 과정에서 지극히 보편적인 그 무엇이다.
실제로 그는 중력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거의 영생하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1부 마지막 부분부터는 조금 지겨운 느낌이 있다.
1부는 지구, 달, 태양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나고
2부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 3부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1부 초반에서는 생명의 진화에 대한 작가의 찬양을 쉽고 재밌게
읽어낼 수 있지만 이후에서는 지나치게 낭만적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에피소드들은 지극히 낭만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중력의 알레고리로 등장하는 크프우프크가
오르페우스의 알레고리인 존재에 패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바다와 피에 대한 낭만적이고 서글픈 발상으로
가득한 에피소드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독창적이어서 이 두 에피소드만 읽어도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머지 에프소드들은 작가의 교양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작가의 교양은 이 글의 재미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왜 도태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보인다. 모든 것이 합쳐지는 와중에 인문학은 지극히 내부의 중심을
향하고 있고, 외부의 학문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스모코미케는 작품의 제목 그대로 일종의 우화이자 은유이다.
내가 전에 읽었던 <나무 위의 남작>만큼 재밌지도 않고
깊은 감동을 주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작품이고
많은 의미를 지닌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문장을 여기에 옮겨 놓으며 이 불성실한
감상문을 마칠까 한다.
"우리가 직면했던 위험은 영원히 사는 것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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