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종의 경제학 논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은 후 쓰는 글에 '감상'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외의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에 감상이란 표현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신장섭 장하준의 공동 저작인 이 책은 우리 나라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있어 여태 접해온 것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이 책은 IMF 이후의 경제적 처방들이 잘못되었으며
특히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뤄진 정책들이 완전한 실패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재벌에 대해 옹호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매우 혼란스러운데 그것은 이 책의 이론에 따르면
내가 여태 찬동하고 있던 두 가지가 사실은 모순되거나
내가 찬성하고 비판했던 것들이 사실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나의 무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 책의 시각 자체가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들이 따르고 있는 거센크로 식 모델은 발전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영미/독일,러시아/한국 등 중도개발국의 세 단계이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의 선발주자와 후발주자라 할 수 있겠는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선발주자일 수록 금융 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이 적다는 점이다. 후발주자일수록 자본의 집중과 선택적
투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가 금융에 깊이 개입하여
방향을 정해준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경우는 상업 금융에 있어
정부의 개입도가 영미권에 비해 상당히 컸다 할 수 있다.
우리와 같은 개발도상국이면서도 예외가 되는 것이 싱가폴 및
대만의 유형이다. 이 두 국가 역시 정부의 개입이 컸으나
이들은 금융을 국가가 관리하는 대신 직접 국영기업을 운영하는
형태로 갔다.
따라서 이 저작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IMF 이후 외부에 의해 강요된 해결 방식, 정부가 그대로 따른
그 해결 방식은 금융의 자유화와 재벌에 대한 금융 동결 및
기준 강화를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이미 선진화되었으며 선발주자였던 영미권에서나 적합한 방식이다.
후발 주자는 따라잡는 입장이므로 그런 기준들을 맞춰가며
선발주자를 추격할 수 없다. 거센크로식 추격 모델에 따르면
후발 주자들, 특히 한국은 국가-은행-재벌의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고 이 축에서 직접적 리스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재벌이다. 우리 나라의 재벌은 국제적 기준에서는 비윤리적이고
순이익이 작은 편이다. 영업 이익은 국제적으로 평균치를 보였으나
상대적으로 과도한 대출로 인하여 영업외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IMF 이후 처해진 조치는 바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시정 요구였고
일정 기준들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소위 빅딜을 강요받았으며
차례로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조치가 실질적으로는 그 어떤 긍정적
효과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외국인 투자의 경우 IMF 이전부터
증가 추세였으며 오히려 조치가 시행된 후에 증가세가 감소했다.
그리고 재벌들의 특이한 구조는 그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국제 기준에서는 불합리할 수도 있는 구조였으나 재벌은
상호출자와 계열사 확대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리스크가 큰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기존의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은 새로운 사업의
리스크를 감당해주는 동력이 되었다. 또한 상호출자 역시
어떤 면에서는 비윤리적일지는 몰라도 저비용으로 일관성 있는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IMF 이후의 국내외에서 재벌에 강요한 조치들은
재벌의 단점들만을 부각시켰을 뿐 재벌이 갖고 있던 긍정적
요소들을 모두 파괴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이후의 긍정적 결과들은
정부 및 외부 조직의 조처에 의한 효과가 아니라 그 조처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한다.
금융에 대한 분석 역시 흥미롭다.
BIS (국제결재은행) 자기자본비율에 대한 기준이 엄정해지면서
국가-은행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기업에 행하던
대출이 어려워졌다. 결국 기업은 자금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기업 역시 자기 자본 비율에 대한 강요를 받았다.
결국 전반적으로 금융경색이 발생하였고 1998년 초부터 발생한
일련의 부도 사태는 바로 이런 조처에 기인한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분석이 아닐 수 없다. 100% 새롭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재벌에 대한 옹호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공존!
저자들은 마지막에서 지금이라도 어서 이런 조처들을 멈추고
예전 시스템에서 새로운 재창조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결론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 이미 개혁이라 불리는 것이
너무도 많이 진행된 시점이 아닌가. 그리고 이미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것의 물결은 너무도 강렬하지 않은가.
감히 내가 결론을 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닌 듯 싶다.
다만 IMF 이전에 우리 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훨씬 높았다는 등의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주변에 일독을 권한다.
같잖은 경제학 복수전공한 나보다도 경제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심각하게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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