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요괴 소설의 일인자인 동시에 디자이너.
일본에서는 이 작가의 책들도 꽤나 잘 팔리는 모양이다.
'우부메의 여름'이란 이해불가한 제목의 첫느낌은
낭만적인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그런 것을
담고 있지 않다. 우부메란 일본의 전설에 나오는 요괴로서
하체에 피를 흘리며 아기를 떠넘기는 존재라고 한다.
중국의 고획조란 것과 유사한 것인데 고획조가 아기를
빼앗는데 반해 우부메는 아기를 떠넘긴다. 그런데 일본어로
우부메의 한자는 고획조와 같다. 즉, 고획조라 한자로 쓰고
우부메라 읽는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요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사물이나 인간을 접할 때 그 과거를 볼 수 있는 탐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사실 그래서 처음에 매우 실망했었다)
이 탐정은 사건의 해결에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오컬트적 분위기를 조금 더 고조시켜 줄 뿐이다.
이 작품은 다행히도 인간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건은 크게 세 가지이다. 어떤 병원에서 아기가 셋이 없어졌고,
한 여자가 20개월 동안 임신하고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실종된지 1년 반이 됐다. 이 세 개의 사건은 역시나 미묘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이 미묘한 얼개를 마지막에 가서 인식론, 요괴설화와 맞물려
논리적으로 설명해나가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 하겠다.
600여 페이지 중 처음의 100여 페이지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교고쿠도와 화자인 세키구치 간의 인간의 인식론에 대한 대화로
채워진다. 사실 대단한 논리는 아닌데 작가가 약간 농간을 부려서
괜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로 만들어 놓은 감이 있다. 그렇지만
간간히 농담과 섞여 나오는 그 대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 부분이다. 화자가 사건 현장에 처음 도착하는
것은 무려 200여 페이지나 진행된 시점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작가가 스토리 텔링에
타고났다는 점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후는 화자인 세키구치의
과거가 조금씩 밝혀지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사건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세키구치가 아니라 교고쿠도이다.
교고쿠도는 돈 많은 집안에서 자라나 고서점을 하는 인물로
매우 박식하고 주인공을 놀리는 것을 여흥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이다.
본의 아니게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 세키구치 대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교고쿠도이지만 교고쿠도는
초반, 중간에 세키구치와의 대화에 드문드문 등장할 뿐이다.
그가 제대로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부분인데
그는 갑자기 나타나서 어떻게 그런 추리를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모든 진실을 술술 말한다.....어쩌라는 거냐;;;
이 부분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범인은 한 추악한 인간으로 밝혀진다.
그렇지만 그 인간은 어렸을 적의 불운한 기억,
집안의 불우한 유전 등으로 이미 약하고 악한 존재였다.
이런 설정 역시 조금 문제가 있는데 지나치게 가능성이 희박한
사항들이 한 인간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래서는 작위적 설정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작위적 설정만 눈감아 준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이다.
고획조였던 사람들이 우부메가 되었다는 화자의 말인지
작가의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표현도 참 좋다.
그리고 작가에게 가장 경의를 표하고 싶은 부분은
작가가 이 작품을 화자, 세키구치란 인물의 기억 찾기라는
또 하나의 얼개로 엮어놨다는 사실에 있다.
이 주제는 위에 열거했던 세 사건의 주제와 겹치는 동시에
다른 층위의 메시지를 던진다. 또한 이야기가 맞물려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세련됐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는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화자인 세키구치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퍼즐 맞추기이다.
세키구치와 교고쿠도의 대화를 통해서, 세키구치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의식이란 것이 불완전하며 우리가 정말 우리인지는
알 수 없으며(확인할 수 없으며), 그것을 알기 위해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그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인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그 부분에 기억의 파편이 남아있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것을 찾아내 옳은 자리에 놓아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어려운 선택이다. 옳은 자리에 놓는다고 더 좋은 결과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자기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운명의 힘에 의해 선택을
강요 받게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그런 강요된 선택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고픈 것 아닐까.
자신이 모르는 자기 자신을 깨닫고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가 읽은 메시지는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의 으스스한 분위기는 요괴나 살인, 광기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자아, 그것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는 데서 오는
그런 으스스함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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