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중심 인물은
장생(감우성 분), 공길(이준기 분), 연산(정진영 분) 세 사람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은
'왜 연산은 공길을 사랑하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영화의 감상에 있어 핵심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반드시 답해야할 것임에는 틀림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포함하여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쓰기 위해
필수적인 질문 몇가지를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꺼내기 전에 몇 가지
배경을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연산은 어머니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궁내에서는 왕의로서의 권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는 모성의 결핍에 시달리고 그 틈을 파고든 것이
녹수이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연산은 어린애 같이
웃고 떠들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며
녹수는 그런 연산을 얼래고 달랜다.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봐도 녹수는 '젖을 준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마지막 애정신에서
연산은 녹수의 아랫도리를 향해 머리를 쑤시는데
이는 자궁회귀를 상징한다 봐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애정 혹은 동성애의 코드는 완전히 부차적 요소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역시 뒤로 미루기로 한다.
장생과 공길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놀이패인데
장생의 대담한 계략으로 왕의 마음을 파고든다.
장생이 공길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간간이 보이는 영화평에 '외줄타기'에 관한 언급이
종종 보이는데 외줄타기 역시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놀이패의 의의는 외줄타기를 통한 인생의 비유가 아니라
놀이패 자체의 본래의 성격인 '해소의 장소'의 창출이다.
장생과 공길 그리고 함께하는 놀이패들은 해소를 위한
공간을 창출하고 그 공간은 연산을 위해 마련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세 주인공이 만나게 된다.
왕이되 왕이 아닌 연산은 권력에서 배제되는 인물이고
그 배제됨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
놀이패는 마더 콤플렉스를 이용해 연산을 사로잡고 있던
녹수를 대신하여 좀더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소의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두 개의 층위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궁궐이란 공간에서의 권력극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패라는 곳에서 펼쳐지는 풍자극이다.
권력극의 미해결 문제는 풍자극에서 해소되어야 마땅한데
이 연결관게가 두터워지며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첫번째 연결관계는 풍자극이 연산의 심리를 대변한다는 것인데
이는 풍자극의 성격상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단지 해소의 역할을
하는데 그쳤더라면 그 이상의 상황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산은 이러한 풍자극을 궁궐의 권력극에 직접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두 층위를 하나로 연결시킨다.
이렇게 권력문제가 제기되면서 다른 문제들도 발생한다.
녹수는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연산의 광기 또한 해소가 아닌 증폭으로 치닫는다.
두번째 연결관계는 연산과 공길의 유사성이다.
이 두 사람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은
처음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면 될 듯하다.
연산이 공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자기애의 발로이다.
연산은 왕이되 왕이 아니고
공길은 남자이되 남자가 아니다.
따라서 연산은 공길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이 나르시시즘적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영화에서 연산을 이해하는 인물은 오직 공길과 처선(장항선 분) 뿐인데
공길이 남자이되 남자가 아님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고
처선은 내시이니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 애정 혹은 동성애의 코드가 왜 부차적인지에 대한 답변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본다. 좀더 명확히 하자면
이 영화의 핵심은 권력의 문제이다.
연산이란 인물에게는 권력이 부재했기에
연산은 광대들이 만든 해소의 공간을 필요로 했으며
그 해소의 공간이 해소의 공간으로 남지 못하고
궁궐 내 권력의 문제라는 같은 층위로 끌어 올려지면서
(적어도 권력의 정도라는 관점에서는 끌어 올려진 것이다)
연산의 광기도 심해진다.
공존이 불가능한 두 층위가 하나로 묶이면서
현실과 욕망의 두 층위 또한 혼동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의 갈등은 그 결정의 시간을 맞는다.
연산이 공길에 대해 실패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상실한 것으로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권력 관계의 실패이다.
따라서 정치적 파국 또한 필연적이다.
영화에서 보다시피 공길이 끝내 선택하는 것은 장생이다.
애정관계에서 연산의 패배는 정치에서의 패배와
거의 동일한 시점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왜 장생이 주인공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장생의 역할은 세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번째는 연산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기는 인물이며
두번째는 두 가지 층위가 접합할 기회를 만들어내는
내러티브 상의 주요 인물이며
세번째는 권력극과 풍자극의 두 층위를 결국은 인생극이라는
더 높은 층위로 끌어올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생이 마지막으로 줄타기를 하며 공길과 나누는 대화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이 영화에서 인간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권력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나
이 권력이라는 핵심적 문제조차 결국은 하나의 놀이판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누구냐는 부차적 질문을 하나 더 던지자면
대중'영화'로서의 주인공은 장생일 것이고
'대중'영화로서의 주인공은 공길일 것이며
진정한 주인공은 연산이다.
이준기라는 훌륭한 캐스팅은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독이다.
관객은 권력의 문제 혹은 인생과 인간의 문제라는 주요한
틀에서 벗어나 이 영화에서 자꾸 애정관계만을 보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문제라면 문제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적극적 질문과
대답을 던진 것을 고르라면 단연 '혈의 누'를 택할테지만
캐스팅과 세련됨의 측면에서 이 영화의 별 반 개를 더 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기에 별 네 개 반을 던지고
싶지만 감우성의 별 다섯개 하고도 반을 더 줘야하는 연기에
별 다섯을 줄 수 밖에 없기에 누군가 이 영화에 별 다섯개를 준다해도
결코 놀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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