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형에게 약간 늦은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도스토예프스키 100주년을 기념하여 지드가 했던
여섯개의 연설문을 번역한 것인데 아주 쉽고 좋은 문장들로
되어있어서 읽는 내내 참 편안하고 즐거웠다.
지드는 자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말하는 척하며 실은
자신의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솔직히
지드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달리보면 지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고, 그에게서 발견한 그 긍정적인 면들이
지드의 사상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지드와 나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다.
지드가 지적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일면 중 하나는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서유럽의
카톨릭과는 다른 것이고 러시아 정교적인 것도 아니며
기독교사상을 토대로 아시아적 정신을 내포하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두 초인의 개념을 보여주었지만
전자가 자신에 대한 긍정을 토대로 한 것과 달리
후자는 거기서 좌절을 본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겸허함이며
그 겸허함은 자기부정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해 숙이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영혼이 세 영역을 가진다고 말한다.
첫째는 이성의 영역이며 둘째는 심오한 영역이며
셋째는 그 중간지대인 열정의 영역이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중간지대에서 발생하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성의 영역이야말로 악의 근원지라
말한다. 물론 이성=악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다다러야 할 지점은 심오한 영역이며
이성의 영역이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정념에 사로잡힌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이점에서 상당히 공감이 갔는데 내가 누누히 강조하는 바
우리는 이성과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그 진실여부와 무관하게도
누가 더 논리적으로 설득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성이 모든 힘을 갖고 모든 것을 지배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경계하는 것도 그런 세계일 것이다.
가장 재밌었던 점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모순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나 자신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면
이러한 모순적 인물들을 나는 몇 사람 알고 있는데 그들은 바로
몽테뉴, 디드로 그리고 나이다.
모순이란 것이 과연 왜 등장하는 것인가에 의심을 품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신념 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균형잡힌 사고를 할 수
없다. 물론 몽테뉴와 디드로의 출발점은 다르다. 그리고 나도 억지로
끼워넣어 이야기를 진행시키자면 몽테뉴와 나는 편견을 피하기 위해
모순되는 양자의 이야기를 자기 내부에서 동시에 진행시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디드로는
도덕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하나의 논리를 진행시켰고
그 논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논리를 진행시키다가
하나의 모순점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모순이란 말의 부정적 뉘앙스가 아니라 그 모순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있다.
그러니까 또 사족을 달자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나 자신이 갖는
여러가지 모순에 대한 변명의 역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더 이야기해보자면 진리 혹은 진실은 자신이 생각한
바로 그 위치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각자가
깨달은 자이고 이것 자체로 이미 역설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의구심을 표하고 그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논리 역시
처음의 논리와 함께 커나가게 된다.
이 때 나타나는 자기모순은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논법
(타인을 자신의 의견에 합치시키려는 시도)와는 달리
자기자신을 진정으로 옳은 위치로 이동시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그에 상응하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설전에서 승리하고 타인을
설득시켰다 해서 자신의 의견이 옳은 것은 아니다.
모순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모순은 자기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의심(절대 회의적인 것이 아닌 단순한 의문)과
자기탐구의 과정을 의미한다.
내가 누누히 강조하듯 20세기 이후 개인의 자아라는 것은
너무도 비대해졌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충돌을 가져온다.
자기 안의 모순이란 것은 어찌보면 자아의 분할이다.
비대해진 자아를 분할시킴으로써 자기 안에 각기 다른 타인을
상정하고 이를 통해 객관적 진실을 탐구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모순이 생겨난 근원이며 그 목적이다.
여기서 몽테뉴, 디드로, 도스토예프스키와 나의 차이가 발생한다.
세 명의 위대한 사람들이 자기모순 속에서 진리의 길로 나아가고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발견하는 반면, 나는 나의 방법론에
오만한 자기만족감을 가질 뿐 그들만큼 위대해지지 못했다.
세 사람이 자기모순을 통해 변증법적 발전을 이룩했다면
나는 자기모순의 논리에 갇혀 그대로 무너지고만 것이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바는 내가 그들의 위대함을
남보다는 조금더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이 이렇게 너저분하고
자기모순적 인간으로 남는다 해도 그것에 후회는 없다.
사설이 너무 길어져서 감상은 여기서 끝내도록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모순에 관한 평소의 내 생각이
마구 흩어진 채로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더 긴 글을 남긴다는 것이 무의미해보이기 때문이다.
끝내 한마디를 더 변명해보자면 완벽한 논리로 무장하여
승리하는 것보다는 자기모순 속에서 고민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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