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아임소리 마마가 너무 재밌어서 바로 잡아버렸다.
추리소설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브 뢰퇴르에 따르면 미스테리/범죄소설/서스펜스로
나뉘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는 소설/마지막 반전이 뛰어난 소설로
구분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덕이다. 여태까지 읽은 그의 작품,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레몬(분신)'은
하나같이 읽는 내내 재미가 있던 쪽이다. 물론 반전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묘사였다.
정말이지 책을 놓을 수 없는, 책이란 매체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으면서 처음에 약간의 실망을 느꼈다.
언제나 나오키 상 후보에만 머물렀던 게이고가 나오키 상을
거머쥔 작품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전작들처럼
스피디한 전개가 이뤄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치가 너무 컸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역시 상을 탈만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상 욕심이 났던걸까.
묘사와 서술은 여전히 깔끔하지만 뭔가 유유히 흐르는 맛은 분명 없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처럼 책을 차마 못 놓고 몰입하지도 않았고
초반 부에는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이런 느낌조차 약간
착각일 수도 있겠다. 잠깐 읽었다 싶으면 스무 페이지 정도는 지나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시 상에 대한 욕심으로 약간의 스타일
변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뭔가 묵직하다. 그리고 전작들의 놀라운 반전보다
더욱 상상도 못한 반전이 나온다. 좀더 심각하지만 덜 사회비판적이고
덜 스피디 하지만 좀더 무게가 느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트릭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놀라웠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의 트릭은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최고의 트릭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가 그 트릭에만 있지는 않다. 그 트릭을 위해서
사전에 배치해둔 정교한 얼개, 수학이란 영역과 주인공의 심리와의
미묘한 교차에 그 진정한 묘미가 있다.
그리고 독자를 속이는 것도 이중적이다. 일차적으로 그 트릭에
속고, 이차적으로는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속는다.
이 이중의 속임수는 결과적으로 이성적인 충격과 감성적인 충격을
동시에 가져온다. 물론 '호숫가 살인사건' 같은 경우도 이 두 부분을
정교하게 엮어놓았지만 이 작품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 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이중의 속임수에서 오는 이중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과 감동을 안겨준다.
다빈치 코드 따위가 100만 부나 팔리는 마당에
이런 책이 1만 부도 안 팔린다는 현실에 조금 씁쓸하기는 하다.
어쨌거나 정말이지 온몸이 다 행복해진 독서였다.
이런 책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 공부 따위를 열심히 해도 되는 걸까.
이런 책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 언젠가 자비출판을 하고 싶다
소망해도 되는 걸까 하는 따위의 고민이 마구마구 자라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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