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치고는 느슨한 편이다.
대단한 반전도 없고, 대단한 트릭도 없다.
이 작품의 미덕은 그런 것들에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하드보일드한 문체에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 미덕이란 것이 하드보일드한 문체 덕에
존재한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확실히 하드보일드한 점에서는 대쉴 해미트나 레이몬드 챈들러에
비할 바가 아니고, 이미 반 세기 전에 유행이 지난 문체와 장르라는
점을 고려할 때에는 때늦은 감도 있다. 그리고 그들 작품들보다도
재미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주 적당히 느슨하여 그다지 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내내 느끼는 그 기분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 살아가며 느끼는 기분이라고 짐작해 본다.
알콜중독자 모임에 항상 나가면서도 그곳에서 단 한마디도 해본적
없는 주인공은 800만 가지 삶이 있고 역시 800만 가지 죽음이 있는
뉴욕에서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하게 살아간다.
그는 투덜대지도 않고 떠들어대지도 않고 하소연 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 부딪치는 것, 그것이 하드보일드의 뜻일 게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신이 알콜중독자임을 인정하는 부분은
꽤나 감동적이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끝까지 담담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버텨내는구나,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중 하나로서만 누군가에게 알려지겠구나
따위의 생각들을 무미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생각하며 책을
덮어버렸던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