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작.
대학 1학년 때 참으로 세상이 버거웠던 나는
'인간실격'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어했다.
그 때 동기 중 하나가 '인간실격'이란 제목의 책이
이미 있음을 말해주었다. 욕이 나올 정도로 실망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 작품에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4년도 더 지나 드디어 읽고나니 내가 쓰고팠던 것과
이 작가가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세상의 추악한 면을 모두 드러내고 싶었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는 자기파괴의 모습이 현현된다.
웅진에서 한 권으로 내어 출판한 두 작품 (인간실격, 사양)을
함께 설명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두 작품의 주인공 요조와 가즈코는 상당히 비슷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단 역자의 말을 빌려오자면 두 작품 모두 작가의 후기작으로
인간실격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며, 사양은 당시 작가가 겪었던
혹은 들었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것이라 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돈이 없다.
그리고 무능력하다. 혼자서는 벌어먹고 살지를 못한다.
그렁에도 사회구조 어쩌고 타령은 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타인을 두려워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두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매력적인
인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주인공은 그것을
이용할 줄 모른다. 오히려 사회의 가장 너저분한 존재 (그러니까
이 개념은 작품 내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시당하는
존재를 말한다)에 무시당하고 이용당한다.
요조는 처음에는 술과 담배로 살아남으며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꾀하기도 하고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두려워한다.
그가 빠져나갈 길은 익살을 부리고 자신을 파괴해나가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가 설 곳은 없다.
사회에서, 인간 사이에서 자신을 위치시키지 못하기에
그는 자기파괴를 선택한다.
그리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가즈코도 비슷하다.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자
변벼찮은 동생의 스승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이 점에서 그녀는 스스로 강박관념을 만들어내는데
그러한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나 변태인가...)
그의 아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답장도 하지 않는
그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고 끝내는 찾아가 동침하게 된다.
그러나 두 주인공의 결말은 다르다.
가즈코는 로자 룩셈부르크 등 혁명 혹은 막시즘과 관련된
도서를 읽으며 혁명을 꿈꾼다.
그것이 사회적 차원의 혁명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녀는 사회의 인습을 넘어서 홀로 아이를 키우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사회적 인습에 대항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구심이 든다. 그녀의 반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항이고
자기파괴를 통해 새로운 시작점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두 주인공은 모두 자기파괴를 시도하지만 그 결말은
정반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가즈코의 시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서 '익살'이란
주요한 주제라 한다. '익살'이란 사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가 무엇에 웃을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가 정말로 인간을 이해못한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는 단지 처음부터 패배주의에서
시작했기에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보편성에 대해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개별성만을 마주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보편성에 대한 개별성이란 결국 유아적
존재를 의미한다.
요조는 여러가지 재능을 타고나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보편의 의미에서는 높은 존재가 될 수 있었으나
개별적 접촉에서 그 지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마저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다.
눈 앞에서 아내인 시즈코가 다른 남자와 잘 때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요조의 모습은 결정적인 패배이다. 요조 역시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라 말하는데, 그 장면에서
끝내 그가 대응하지 못한 것은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
무너지고 그럼으로 인해서 삶의 기반 자체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긴 인생역정을 정리해보면 보편성에 기대는 것에 실패한 후
자신의 연기가 드러나며 개별적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하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버텨내는 것에서도 실패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인간으로서 실격판정을 받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사회에 의미있는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위치를 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그려내지 못하고 끝내 자기 파괴라는 선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길게 적었는데도 얼렁뚱땅 정리한 느낌이다.
뭐, 언제나 그랬으니 새삼 후회하지는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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