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 작.
인종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두 주인공은 흑백의 피부 차이에서
오는 모든 차별을 감수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백인인 여자는 백인으로서의 우월감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미치고 만다.
흑인인 남자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는다고 말한다.
그 둘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짐(흑인 남자)은 결국 변호사 시험에 떨어져 좌절하고
여자는 사실은 그것을 바랐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둘은 절망 절망 절망.
아까 읽은 '느릅 나무 밑의 욕망'과 이 작품 둘 밖에 읽지 않았지만
유진 오닐 극은 두 주인공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책 겉 표지에 영문으로 적혀 있는 유진 오닐의 말을 대충 해석해보자면
'나는 회의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삶에 아주 즐거워한다.'
과연 그가 그런 시각에서 봤을지는 의문이다.
그의 비참한 가족사를 돌아볼 때는 더더욱 의문이다.
유진 오닐 극의 대부분은 가족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가족을 버린 할아버지, 어울리지 않은 자신의 부모,
이혼을 하고 결국 자살한 큰 아들, 무능력한 방탕아 둘째 아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 딸,
그리고 세 번 결혼한 자신의 인생에서
그가 과연 얼만큼의 희망을 발견했을까.
그가 과연 얼만큼의 희망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을까.
'느릅 나무 밑의 욕망'의 주인공들은 도식화되어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정을 충실히 따라가지만
마지막에서 사랑을 통해 그에 반항한다.
(물론 그 반항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오이디푸스적 결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주인공은 결국 사회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랑 이외의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사랑 이외의
모든 것을 놓을 정도로 사랑의 높은 가치를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희망적으로 그려졌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세상 무수히 많은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단어를 갖다 쓰기에는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짐은 결국 화를 내고 절망한다.
다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끝.
두 주인공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종이라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어린 시절 뿐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결코 돌아올 수 없다.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결국 어린 아이 놀이를 하기로 약속하지만
여자는 짐에게 가끔은 uncle Jim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작품은 이제 끝나버렸지만, 커튼은 이미 내려졌지만
짐은 앞으로 어린아이로서 편견없고 열등감 없는 순수한
-새하얀(여자는 짐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다고 믿는다,
그건 이미 뿌리깊은 편견, 돌이킬 수 없는 인식이다-
존재인 동시에 엉클 짐으로서 세상과 꿋꿋하게 싸워나가기를
강요받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자신만은 어린아이 이외의
역할을 하기를 거부하는 이상 짐은 결코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대체 어떤 희망이 있단 말인가.
유진 오닐의 극에서 희망이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그러나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를 보여주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커튼이 내려갔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명제는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뿐.
모든 신의 아이들은 날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아이가 아니다.
유진 오닐의 극은 영미권의 유명한 다른 극작가들, 그러니까
아서 밀러나 버나드 쇼, 테네시 윌리엄스보다 텍스트와 공연 간의
차이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이 작가들의 희곡을 직접 본 적이
없으므로 단지 나의 느낌일 뿐이지만)
텍스트는 참으로 간결한데도 불구하고 극이 상연됐을 경우
텍스트로 얻는 것과는 다른 좀더 강렬하고 확고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이라는 묘한 예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버나드 쇼의 희곡 한 편과 에쿠우스를 읽은 후에
영미 극작품은 때려쳐야겠다.
인문대에서 놀려면 잘난척하기에 용이한 글들을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빌어먹을 헤겔을 읽어야겠다.
버나드 쇼식으로 말하자면
철학자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들'을 뜻하는 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