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간을 읽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루가 안 걸려 책을 끝냈다.
작자인 로버트 실버버그는 작가 서문에서 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한다. 그 자신은 SF로 규정하고 있고
평론가인 홍인기씨도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SF라는 장르가 완전히 정의된 적은 없다.
SF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휴고, 위대한 작가인 클라크 등
SF의 유명인사들이 내리는 SF의 정의조차도 완전히 제각각이다.
그 사이에서 유사성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나에게도 나만의 장르 규정을 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의 규정에 따르자면 SF, 판타지, 환상 소설은 주류 문학에서와는 달리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을 그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환상 소설과 판타지의 차이점은 현실 속에 환상성이 개입하느냐
환상적 세계관 하에서 현실이 진행되느냐의 차이점이다.
SF는 여기에 과학적 원리나 예측에 기대는 부분이 많은 장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SF는 판타지나 환상 소설과 섞여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로저 젤라즈니가 쓴 '앰버 연대기' 같은 경우도 SF와 판타지의
경계에 있다. 사실 젤라즈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면 순수한
판타지라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두개골의 서' 역시 같은 식이라 생각된다. 나는 이 작품에서 SF 적인
요소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작가 자신은 '영생'이란 것을 다루고 있으니
SF라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영생이란 SF보다는 판타지나 환상소설에
어울리는 주제이다. 셰클리의 불사판매주식회사 같이 육체의 이동을
통한 영생이 아닌 이상 SF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을 SF로 분류하는데 반대한다.
앰버 연대기가 SF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과 이 작품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듯 하다.
이 작품의 구성은 탄탄하고 주제는 적당히 심각하고 십여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재미있다.
차라리 SF라는 딱지를 떼고 읽힌다면 웬만한 주류문학을 능가하는
문학성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생'이다.
네 주인공들은 영생을 찾아 떠난다. 네 주인공들의 교차서술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각각의 고민과 갈등들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확실히 나타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됨에 약간의 놀라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 놀라움과 동시에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작품은 끝나게 된다. 그리고 영생이란 것에
대한 주인공들의 확신과 달리 독자들은 그 확신과 불신 사이에서
머문 채로 책을 덮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영생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영생을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인공들의 내면의
문제들이 진정한 주제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 중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해야 한다.
영생을 택하기 위한 과정은 불신과 불안의 연속이다.
영생을 얻은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영생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교차하는 와중에 대답은 독자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최후의 대답은 독자에게 지독한 공허함과
멍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노력, 그리고 그 획득 이후의 불신과 회의감.
그리고 그것을 얻게 되는 과정의 불합리성.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에 대한 우의이고, 사회 한가운데에서 활보하는
각각의 인간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 작품을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품 표지에 적혀있는 많은 찬사들과 달리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충분히 훌륭하며
짜임새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재미있다.
그리고 덕분에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즐거운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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