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
농부 김광덕 2006/03/24 19:15 추천 1 스크랩 1
장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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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덕
“쓰레기는 쓰레기를 부르는 마력이 있다. 담배꽁초는 지구 전체 오염에 큰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불게 만드는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엄청난 비중이다.”
“사람들은 담배를 버리기 전에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뒤 발로 비벼서 산산조각을 만든다. ‘버리고, 증거를 인멸하는’ 그 몇 초는 도덕을 두 번이나 버려야 하는 엄청난 고뇌의 시간이다. 버려진 도덕은 불도저 100대로도 못 줍는다.”
이건 어떤가. “자기 자식 잘 되길 바라지 마라. 자식이 좀 모자라거나 실수를 해도 잘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쉽다. 그게 자식 잘 되게 하는 길이다.”
“‘봉사’라는 말은 틀렸다. ‘보답’이나 ‘나눔’이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 자연이 뭘 바라고 주는 거 봤나. 감사하게 받는 걸 돌려주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봉사가 매우 쉽다.”
이 어마어마한 명언을 내뱉는 사람 김광덕(66). 초등학교만 나온 농부다. 그래서 그가 말한다. “사실은 쓰레기나 줍는 농사꾼이 아니라 전문가가 해야 할 얘긴데…”라고. 전문가들이 말을 안 해주니, 자기라도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여주 흥천면에 있는 이 농부 집에서 그를 만났을 때, 농부는 큼직한 집게를 들고 있었다. 집게를 넣는 비닐집에는 ‘only one earth’(하나뿐인 지구)라고 적혀 있다.
“어릴 때 우리집에 동네 어른들이 많이 놀러왔어요. 사랑방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재떨이 비우는 게 진짜 싫었어요. 애가 막 짜증을 내니까 어른들이 이래요. 광덕아, 꽁초를 오줌에 섞어서 마늘밭에 뿌려봐라. 벌레들 다 죽는다.” 정말 벌레가 다 나가떨어졌다. ‘농사 잘 지어서 부자 되려고’ 꽁초줍기가 시작됐다.
“농부들 피우는 담배는 담배잎을 말아놓은 궐련이에요. 꽁초가 잘 안 생겨요. 그때 공무원들은 필터담배를 피웠죠. 그래서 학교 같이 관공서 주변에서 꽁초를 주웠어요.” 학교 옆에서 꽁초를 줍고 있으면 동네 형들이 시비를 걸었다. “야, 저기 거지 왔다, 거지.” 형들은 광덕이를 뻑하면 두들겨팼다. “그래서 깨진 사금파리며, 퇴비로 쓸 소똥도 같이 주웠어요. 그랬더니 거지 취급 않더라고요.” 학원 폭력이 무서웠던 아이에게 쓰레기 줍기 인생이 열렸다. 열 다섯 살 때였다.
스물 두 살 되던 해, 훈련 나왔던 미군들이 버리고 간 철판으로 집게를 만들었다.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니까 편했다. 40년 넘게 쓰다보니 끝이 2㎝ 정도 닳았다. 가는 세월에 허리도 굽어, 닳은 집게가 또 키에 맞는다. 25년 전에 천막천으로 집도 만들었다.
어디를 가든, 농부는 집게와 함께 다닌다. 상가(喪家)에 갈 때엔 무덤까지 따라가 묘소 주변 쓰레기를 줍는다. 밭일 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갈 때에도 집게를 들고 갔다. 질려 버린 친지들이 어느날 몰래 회의를 소집하고는 집게를 강에 던져 버렸다. “자맥질해서 주워 올렸어요. 정말 죽을 뻔했어요.” 집안 사람들, 그래서 포기했다. 그 집게, 어떻게 하시려나. “죽을 때 달라는 사람이 없으면 이것도 결국 쓰레기가 되겠죠? 그래서 같이 묻어달라고 했어요.”아직 집게를 달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젊은날 중동에서 일해 모은 돈 450만원으로 산 논밭이 투기바람에 10억대로 뛰었다. 그 땅에 솔밭농원이라는 농원을 만들었는데, 파는 거 하나 없이 공짜 자연학습장을 운영한다. 자기 죽고 나서도 남이 와서 보고 자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잉어 사는 연못. 아이들 자연 시간에 개구리 해부실습 하지 말고 잉어 해부하라고 나눠준다. “개구리 해부해놓고 봉합해줬다는 말 못 들었어요. 잉어는 해부하고 먹으면 되지요.” 그리고 거위 떼. 동료들 쉬는 동안 자발적으로 ‘보초를 서는’ 슬기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텅빈 잔디밭. “반딧불이가 이슬 먹고 산다잖아요. 그래서 이슬 잘 품는 잔디밭 만들었더니 진짜 반디들이 몰려왔어요.” 여름밤이면 풀어놓은 염소들 등에 개똥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그 불빛을 서로 보고 염소들이 난리를 친다.
잉어 새끼 잡아먹으려고 물총새도 날아온다. 물이 마르기라도 하면 이를 ‘예감’한 물방개들은 미리 날아가 버린다. 농부는 놀러오는 아이들에게 그 신비를 이야기해준다. 산에는 장뇌를 심는다. 20년 있다가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달라고 하면 줄 참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자기가, 죽고 없으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할 것이다. 모두 자연이 가르쳐준 섭리요, 인간이 배워야 할 원칙과 지혜다. 또 도로변에 있는 농부네 가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군인은 참외, 전화 공짜.’ 나라 위해 봉사하는 젊은이들, 그렇게라도 보답하겠다 한다.
그렇게 쓰레기 인생 40년에 농부는 섭리를 절로 알게 되었다. “두번 사는 인생이면 대충 한번 살아보겠는데, 한번밖에 없으니까, 제대로 살아야죠.” 농부 김광덕, 철학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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