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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착각

2001년 9월 11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티비 앞에 다함께 앉아 있었고
나는 뉴스를 보며 미친듯이 울었다.
삶이 끝난 자들보다 계속 되는 삶 속에 상실감을 안고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견딜 수 없어 울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없이 함께 울어주었던 사람들보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정녕 덜 불행했던가. 그들이 잃은 것이 정녕 더 적었던가.

내 한없는 비겁함.
7년 여 전 내가 한껏 울었던 것은, 단지 마음 아픈 지금보다 더
마음 깊이 아파하며 그렇게 울 수밖에 없던 것은
평온한 삶의 마지막을 맞은, 갑작스런 불행을 맞은 평범한 혹은
너무 부유한 그들의 삶에 동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당장 죽어가는 이들은 그들보다 훨씬 불행하지 않은가.
지금 가자 지구에서 숨죽이며 공습의 두려움에 떠는 그들,
식수와 식량이 떨어지까 안절부절 못하는 그들의 삶보다
매일 고층 사무실에 들어서고 도심의 경적 소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삶이 내 삶에 보다 가깝다 해서 후자에 더욱
동조하는 것은 비겁하고 치사하고 역겹지 않던가.

내가 그대 한 사람을 증오함으로써 다른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나는 결코 기쁘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대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이를 증오하게 된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와 가장 닮지 않은 이들 사이에 진실있음에 그들을 더 사랑하고
나와 가장 닮은 이들 사이에 거짓이 있음에 그들을 한 번 더 의심하리라.

지금 울지 못하면서 그때 울었던 것은 나의 우둔함 때문이요 비겁함 때문이다.
이토록 평온한 삶에 감사해야 하는가 수치스러워 해야하는가.
나는 수치스런 평화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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