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
한 아이가 실종된다. 아이의 어머니는 마약 중독의 대책없는 또라이.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의 숙모다. 아이는 집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유괴범은
딱히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변태성욕을
채우기 위한 납치가 굉장히 많은 것 같다).
그 와중에 아이의 어머니와 20만 달러가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1,2권으로 나뉘어진 이 작품은 1권이 끝날 때까지 평범한 유괴사건만을
다루고 있다. 20만 달러와 마약이 등장함에도 그쪽에는 이상하게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립탐정과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두 형사의 재밌는 농담따먹기와 활극만으로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그리고 2권의 중반부까지도 활극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마지막 1/4에서
쏟아지는 진실들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선과 악이 뒤바뀌고 누가 옳으며
누가 그른지 판단할 것을 독자는 종용받는다.
우리는 진실과 견고한 형식미를 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결코 정리되지 않을 아름다운 거짓을 택해야 하는가?
(물론 선악 구분이 너무나도 뚜렷한 로봇만화는 결코 아니지만...)
善의 이름으로 범죄가 일어나고 역시 善의 이름으로 그 범죄를
파헤쳐나가는 자의 앞에 그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善을 위해 惡이 행해져도 되는가? 진실을 위해
이미 행해진 그 악이 돌이켜져야만 하는가?
이 너무나도 난해한 질문 앞에 켄지와 제나로는 다른 길을 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나긴 이별을 택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조금 안타깝다는 느낌 뿐이었는데 그러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 가슴이 아려온다. 그 답이 너무나 큰 무게를 지니는
문제를 맞딱뜨렸을 때, 특히 그 문제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맞딱뜨렸을 때, 더군다나 서로가 다른 답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재밌게 읽었고, 정말 반전에 놀랐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 속에는 제나로가 느꼈을 삶과 영혼의 무게만이
아른거린다. 우리말 제목은 <가라, 아이야, 가라>지만
원제는 <Gone, baby, gone>였음을 생각해 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baby는 아만다가 아니라 앤지였던건지도 모르겠다.
gone, 그녀는 갔다. 그녀가 왜 갔는지,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데니스 루헤인은 말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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