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 대단하여 호기심을 증폭시킨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약간 덜 재밌고 약간 무거운 문체랄까.
분명히 재빠르고 숨가쁜데 게이고의 소설들보다 약간 느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느낌 상의 차이일 뿐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한 여자와 이십오세 연하의 남편이 있다.
그들은 보육원 선생님과 원아 사이로 부부 관계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모 사이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고 1장에서 바로 죽어버린다-_-
이들을 죽인 범인은 처음부터 밝혀진다.
최근 일본 추리소설의 경향은 누가 범인인지 밝히는 것보다는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일종의 사회파 소설들이라 할 수 있겠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렇고
기리노 나츠오도 그렇다.
처음 살해당하는 두 사람 중 남자는 40대, 여자는 60대이다.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40대 이상이다.
일본의 노령화 문제가 심각하기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은지 좀 지난 모 소설에서도 작품의 주제는 노령화 문제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40대, 60대가 거의 전부임에도
(70대가 한 명 있다-_-;)
서술은 마치 20대와 40대가 주인공인 것처럼 되어 있다.
그건 작가가 의도한 바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젊은이들처럼 사건의 중심에 있고, 행동하고, 살인한다.
살인을 아무 생각없이 저지르고 다니는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여자다.
그녀는 창녀촌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난다.
그녀는 어머니 대신 어머니의 유품이라 믿어지는 하얀 구두를
어머니로 여기고 자란다. 약간 정신이 이상한 그녀는 구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녀는 작품에서도 표현되듯이 '악' 그 자체이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악'도 아니고 '노인' 문제도 아닌 듯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애정을 갈구하는 인물들이다.
40대, 60대가 되었음에도 외로워하고, 아니, 그래서 더 외로워하고
허전해하는 그런 인물들이다.
주인공 아이코는 그런 외로움을 의식하는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할 새 없이 살아가는 방편으로 살인과 절도를 택하는
아무 생각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 내부의 '악'의 근원이 마지막에서
밝혀진다. '악'의 근원은 그녀 내부에 부재하는 무언가이고
그녀는 그것을 마지막에 되찾는다. 그녀가 그것을 되찾고 모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시점이다.
아이코의 '미안해, 엄마'라는 대사는
나에게는 '외로웠어 너무나'로 들린다.
그렇다, 이 책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40이 되고, 60이 되어도 벗어날 수 없는
40이 되면, 60이 되면 더욱 사무치는 그런 인간이란 존재의
서글픈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