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갈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고 가방에 책이 한 권도 없어서 산 책.
원래는 그 유명하신 미야베 미유키 아줌마의 '용은 잠들다'나
모시기 작가의 '작은 것들의 신'을 사려고 했었다.
'용은 잠들다'는 책 값이 약간 더 비싸서 '작은 것들의 신'을 구입하고
올라가서 담배를 문 채 책을 살폈다.
근데근데근데 내가 알던 단편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책-_-
당황하여 부리나케 내려가 바꾸려는데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너무 땡겨서 결국 구입. 과외하는 곳 앞 고수부지에 앉아 읽으려는데
벤치에 온통 연인들뿐이라서 왠지 모르게 송구스런 마음으로
아래로 내려가 대충 아무데나 쭈그리고 앉아 감상-_-;;;;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많은 찬사를 바치고 싶다.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요소는 이 책에서는 거의 판타지에 가깝게
변형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과학적 정합성에 크게 기대지 않고 있다.
몇 십 페이지 읽고난 후 뭔가 느낌이 달라서 저자 사진을 보니
역시 여자였다.
이 작품의 미덕은 서술방식과 심리묘사에 있다.
두 주인공의 교차하는 시점은 끝까지 아귀가 잘 들어 맞는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이야기하지 않은 점, 평생을 서로 사랑하면서도
같은 기억을 각기 뒤바뀐 시간대에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그 애절함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담담하게 묘사하는 순간순간들 사이에
젖어있는 기다림의 아픔, 비밀을 간직해야하는 고통 등은
남성작가라면 절대 쓰지 못했을 그런 세심한 글쓰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과학적 정합성의 부재 따위는 단점이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순문학 작품보다 더 세밀하고 따뜻한 심리 변화 과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몇 가지 단점이 더 있기는 하다. 무려 67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은
좀 과하다 싶다. 내가 작가였더라면 적어도 100페이지는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스토리 진행이나 심리 변화 과정에 있어 불필요한 부분이
약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마 작가는 그 부분도 꼭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정서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넘어갈 문제다.
요즘 책이 눈에 안 들어와 고생이 심했는데 간만에 재미있고
따뜻한 작품을 읽어서 행복하다. 오랜만에 밤을 새워 책을 읽는
기쁨을 맛보았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좋은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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