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에 담긴 제주의 하늘…숲속에 꽁꽁 숨은 물찻오름의 비경
[쿠키 레저] 수면에 하늘을 담은 물찻오름은 찾아가는 길부터 비경의 연속이다.
삼나무 가로수로 유명한 1112번 도로에서 물찻오름 표지판까지 이어지는 약 4.5㎞의 고즈넉한 숲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연상시킨다. 삼나무 숲길의 호젓함에 이끌려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던 한 길. 그 샛길이 바로 물찻오름 찾아가는 숲길이다.
시멘트 길과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이어지는 한적한 숲길은 원시림을 가로지른다. 20년 동안 오름을 비롯한 제주도의 비경을 필름으로 남긴 고 김영갑씨의 사진첩을 넘기듯 계곡을 건너고 유려한 곡선의 숲길을 돌 때마다 만나는 미지의 풍경은 이국적이다 못해 생경하다. 길섶에선 멧비둘기가 무시로 날아오르고 삼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송악(덩굴식물)을 뜯어먹던 노루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다 나그네와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진다.
물찻오름은 화산석을 쌓아 만든 표지석이 없으면 찾기 힘들다. 나보란 듯 중산간지대의 광활한 들녘에 솟은 여느 오름과 달리 물찻오름은 숲속에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둥산인 용눈이오름과 달리 물찻오름은 온갖 활엽수들로 뒤덮여 산정의 분화구가 아니면 감히 오름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휘파람새가 홀로 노래하는 숲은 산뽕나무 떼죽나무 좀작살나무 서어나무 꽝꽝나무 졸참나무 등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살아있는 식물도감이다. 여기에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수줍은 듯 길섶에 뿌리를 박은 야생화들이 원시림의 생명력을 더한다.
커다란 혹을 매달고 자라는 나무,뿌리가 반쯤 뽑힌 채 비스듬히 누워서도 호흡하는 나무,덩굴식물과 공생하는 나무 등 물찻오름 가는 길에서 만난 나무들은 인간의 세상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느닷없이 발밑에서 쿵쿵거리는 진동음이 난다. 화산 활동으로 땅 속이 비어 있다는 증거다.
물찻오름 오르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은 데다 얼키설키 얽힌 나무뿌리들이 계단 역할을 해 오르기가 쉽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8부 능선쯤엔 산행객들이 화산탄으로 쌓은 돌탑들이 드문드문 솟아있고 조릿대는 미풍에도 서로 잎을 부대끼며 비명을 지른다.
제주도의 오름 중 정상에 분화구가 있는 오름은 물찻오름 물영아리 물장오름 사라오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사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오름이 바로 물찻오름이다.
조천읍과 남원읍,그리고 표선면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물찻오름은 정상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고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오름 둘레가 ‘잣(城)’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령스러운 산이라 하여 검은오름으로도 불리는 물찻오름은 해발고도 717m,오름의 순수한 높이는 비고 150m,둘레 1㎞로 깔때기 모양의 호수 깊이는 약 15m로 추정된다.
호수의 지름이 100m 남짓한 물찻오름의 분화구는 세상을 담아내는 거울이다. 뭉게구름이 흐르는 시리도록 푸른 호수는 계절 따라 다양한 색깔의 옷을 갈아입는다. 여름에는 짙은 초록옷으로,가을에는 타는 듯 붉은색으로,그리고 겨울에는 순백의 빙판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연초록으로 물든 봄날만큼 싱그러운 때도 드물다.
졸참나무 가지에서 날아오른 까마귀 한 마리가 태고의 정적을 깨고 수면을 스칠 듯 저공비행 한다. 날갯짓에 놀란 수면이 동심원을 그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원시의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주=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여행메모
생태계의 보고인 물찻오름은 트레킹과 산악자전거(MTB)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제주시에서 11번 국도(5·16도로)를 타고 한라산 방향으로 달리다 1112번 도로를 만나면 좌회전한다. 구좌읍 방향으로 900m쯤 달리면 오른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나온다. 이곳에서 물찻오름 표지석까지는 약 4.5㎞.
승용차를 타고 물찻오름 입구까지 갈 수도 있으나 숲길의 호젓한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1112번 도로 갓길이나 시멘트길 중간쯤의 공한지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간편한 복장에 장갑과 트레킹화는 필수. 무작정 걷기보다 원시림의 식생과 조류,동물 등을 살피며 트레킹하는 것이 좋다. 오름 전문 여행사인 뭉치이벤트(www.뭉치.com)에서 산악자전거도 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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